개혁의지 후퇴해선 안된다(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3년전의 6ㆍ29에 대해선 두가지의 분석틀이 대립되어 왔다. 하나는 6ㆍ29가 당시의 집권세력이 국민의 요구를 받아들여 민주화로의 체질개선을 약속한 것이라는 시각이고,다른 하나는 애초부터 민주화의 의지보다는 정권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임시방편적인 승부수였다는 시각이다.
이 두가지 시각가운데 어느 쪽이 더 진실에 가까운가를 이 시점에서 판정내리기는 어렵다. 어느 쪽이든 그것은 결국 그 뒤의 전개과정을 통해 입증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평가에는 좀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또 6ㆍ29가 「민주화의 의도」와 「정권안보적 계산」이 복합된 것이라는 제3의 분석도 나올 수 있을 것이다.
6ㆍ29선언의 원인과 배경이야 어떻든 그때나 지금이나 국민들의 기대는 한결같다고 본다. 오랜 과거의 권위주의 사회에서의 적폐를 하루빨리 청산하고 민주화를 촉진시켜야 한다는 것은 모든 국민의 가슴속에 자리잡고 있는 소박하면서도 뜨거운 열망이라고 믿는다.
그러면 현재 우리 사회가 과연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는가. 대답은 아무래도 유보적일 수밖에 없다. 최근들어선 초기의 개혁의지가 퇴색하고 과거의 권위주의적 사회로 복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징후들이 여기 저기서 나타나고 있고,그에따라 국민의 우려도 높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구체적인 보기로서 지자제는 아직도 그 실시전망이 불투명한 상태이고,각종 법 개정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크게 후퇴했으며,시국관련 구속자의 수는 오히려 5공때를 능가하고 있다. 경제적인 면에서도 부동산투기ㆍ과소비 등으로 해서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갈등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숱한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5공때에 비해서는 그래도 자유와 자율의 폭이 넓어졌으며 민주화의 싹이 아직은 시들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정부의 개혁의지와 그 실천력이 가져다 준 성과이상으로 국민의 각성된 민주의식과 성장된 역량에 힘입었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우리는 현 집권세력이 3년전 6ㆍ29선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때의 위기의식과 개혁의지를 되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때의 위기의식과 그때 그렇게 국민을 기쁘게 했던 개혁의 약속을 오늘 새롭게 재인식하고 다짐하지 않는다면 「총체적 난국」은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민주화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는 것도,그 이행에는 많은 사회적 비용과 부작용이 뒤따르는 것도 국민들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방임」보다는 적극적인 「관리」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분명한 방향감각을 가지고 균형속 개혁을 모색하고 있다는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3년전의 선언내용이 그러했듯이 과감한 개혁만이 사회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6ㆍ29선언의 골자가 기득권의 포기였다면 이 시점에서 다시한번 그 기득권을 포기할 각오를 새로이 해야 한다. 그래야 민주화도 가능하고 정권의 위기도 예방할 수 있다. 3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기본적인 상황도 같고 국민의 요구도 같으며,따라서 그 처방도 같을 수밖에 없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