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나라 장벽은 없어지는데(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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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상반된 이념과 국가체제,이질화된 사회,엄청난 경제격차를 극복하고 짧은 시일안에 하나의 민족국가를 지향하는 실험이 독일에서 7월1일부터 시작된다. 동서독의 통화 단일화를 통한 경제통합이 이날부터 실현되고 국경이 완전 개방됨으로써 통일의 거보를 내딛게 된 것이다.
이 실험은 비록 서독이 동독을 흡수,합병하는 형태이지만 지난 50년 가까이 쟁패관계에 있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체제의 접목을 시도하는 가장 구체적인 선례라는 데서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다. 또 여건은 다르지만 앞으로 비슷한 통일작업을 모색하고 있는 우리로서도 눈여겨 보아야 할 과정이기 때문에 더욱 깊은 의미가 있다.
독일통일의 과정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비록 예상 밖으로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한 바탕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의 축적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점이다.
독일에 분단은 있었지만 단절은 없었다. 40년 넘는 대립관계 속에서도 민족동질성 유지의 기본조건인 인적 왕래가 끊인 적이 없었으며 경제ㆍ문화적 교류가 활발했었다.
통제사회라 일컬어지면서도 동독 국민들은 서독의 텔리비전방송은 제한없이 시청할 수 있었고,서독에서는 동독에 관한 정보는 국민이 원한는대로 접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정부지도자는 물론 정치인들도 수시로 접촉하며 양독교류에 어려운 점이 있으면 이를 제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이처럼 양독 국민은 서로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이해하며 민족공동체 의식을 갖고 동질성을 유지해왔다. 이러한 밑거름이 있었기 때문에 40년의 시간을 뛰어넘는 엄청난 통일작업을 단기간에 진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동독국민에게 40년의 경험과 가치관ㆍ제도를 한꺼번에 포기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상당한 기간에 걸친 적응단계도 없이 닥친 상황에서 갈등과 혼란은 극심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식 시장경제도입에 따른 기업의 도산,대량해고에 따른 실직등 기본적인 생존권과 직결된 고통도 심각한 문제다.
양독 국민으로서도 동독 경제부흥에 쏟아넣어야 할 막대한 자금압박을 견뎌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정부의 재정을 늘려야 하니 세금을 더 내야하고 많은 돈이 풀리니 인풀레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고통은 하나의 민족 국가건설이라는 명제에 비하면 일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치를만한 값어치가 있는 고통이고 희생인 것이다. 그 다음에 올 통일독일의 성장과 활력은 이를 상쇄하고도 남을 엄청난 과실이기 때문이다.
불과 1년전만해도 독일보다 남북한의 통일이 훨씬 용이하고 빠를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통념이었다. 통일을 저해하는 국제적 여건이 남북한에 비해 그쪽에 많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그러나 우리는 4개월동안 중단했던 남북한간 대화를 이제서야 재개하려하고 있다. 분단 40년동안 통일은 항상 남북한대화에서 가장 많이 부각된 문제지만 신뢰구축ㆍ인적교류의 원칙하나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
동서독 통합의 과정은 앞으로 재개될 남북한 대화에서 풀어나가야할 기본문제가 무엇인지 많은 점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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