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취재일기

비비 꼬인 대통령 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포용정책을 재검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포용정책이 핵실험을 가져왔다는 지적은 여유를 갖고 따졌으면 좋겠다."

노무현 대통령이 10일 오전 여야 지도부와 북한의 핵실험 강행에 대한 대책을 협의한 자리에서 한 말이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사면초가에 몰린 참여정부의 포용정책에 대한 미련이 느껴진다. 문장을 뜯어보면 포용 정책의 재검토는 '강요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여운이 감돈다. 대통령은 포용정책과 핵실험의 인과관계도 여유를 갖고 따지기를 희망했다.

전시작전통제권과 관련된 노 대통령의 말도 선뜻 알아듣기 어렵다. "(전작권) 방침을 변경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새로운 상황에서 어떤 변화가 있는지 연구해 보겠다"고 했다. 전작권 환수를 일부 수정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되나 '변화'와 '현상 유지'의 경계가 모호해 대통령의 속뜻을 퍼즐처럼 맞춰야 할 판이다. "핵실험이 이뤄진 상황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어떤 것을 할 수 있을지 새로운 상황에서 새롭게 검토해 보겠다"는 발언은 또 어떤가.

북한 핵실험이란 비상정국에서 노 대통령의 말이 비비 '꼬이고' 있다. 워낙 민감한 사안이라 '입조심'이 중요한 건 사실이지만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의 진의를 따라잡기 힘들 정도라면 문제가 크다.

9일 기자회견에서도 그랬다. "포용정책은 궁극적으로 포기할 일은 아니지만, 상황이 바뀌고 있는 객관적 상황" "국제사회의 강경 수단 주장에 대해 '대화만을 계속하자'고 강조할 수 있는 입지가 상당히 없어진 것 아닌가" "포괄적 접근 방안은 내용이 현저히 달라질 수밖에 없지 않겠나" 등 노 대통령은 주로 수동적 입장을 보였다. '~않지만' '~않는가'처럼 조건을 달거나, 동의를 구하는 문장이 많았다. 이 같은 말투는 자칫 대통령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표현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9일 한글날 기념식에서 세종의 한글 창제를 '자주적 실용주의'라고 정의하며 참여정부의 대북.외교 정책에 자신감을 보였던 노 대통령의 모습과 대조적이다.

노 대통령은 북핵 정국에서 '조율된 조치'를 강조했다. 그러나 지나치게 '조율된 화법'은 그렇지 않아도 불안한 국민을 피곤하게 한다. 당연히 설득력도 떨어진다. 사실 요즘처럼 대통령의 명확한 입장이 중요한 때도 없지 않은가. 게다가 지금은 "내가 다른 데선 덜렁덜렁하지만 북핵 문제만큼은 정말 신중하게 한다. 속된 말로 통박을 굴린다"(2003년 11월)고 했던 때와 상황이 180도 다르다.

박정호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