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책임 불인정 증후군' 앓는 노무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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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노무현 대통령은 ‘자기책임 불인정 증후군’을 앓고 있는 것 같다. 9일 있었던 청와대 기자회견 얘기다.

노 대통령은 이날 오후 5시30분 한·일 정상회담을 마치고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당초 이 회견은 정상회담 결과를 언론에 브리핑하는 자리로 예정됐으나 북한의 핵실험으로 ‘한·일 정상회담과 북한 핵실험에 대한 기자회견’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이 자리는 노대통령이 그동안 추진해온 대북 포용 정책이 파산을 선고받은 자리였다. 불과 수시간전 김정일은 핵방아쇠를 잡아당겼다. 이는 햇볕정책의 사망선고이자 노 대통령이 지난 3년반 동안 해온 북한에 대한 오판이 백일하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노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오판했다는 것은 그가 해온 일련의 발언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노 대통령은 “북한은 핵을 포기할 용의가 있다. 이 문제는 풀리게 돼있다(2004.4), 북한의 핵보유가 일리 있다(2004.11), 북한 핵실험 얘기는 근거없고 불안하게 만들고 남북관계를 해친다(2006.9), 핵실험 가능성을 예측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2006.9)” 고 공언해왔다.

이같은 일련의 발언은 대한민국의 국정 책임자이며 국군최고통수권자인 노 대통령이 북한 핵문제에 깜깜했으며, 보수파의 정치공세라고 간주했으며 어떨 때는 김정일의 핵 장난을 긍정적인 시각에서 보고 사전에 전혀 예측못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한마디로 노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오판에 오판에 오판을 거듭 한 것이다.

그렇다면 노대통령은 이날 지난 3년반동안 자신이 저지른 오판에 대해 ‘내가 잘못 생각했다. 오판했다.’라고 사과를 하던가 국민들에게 양해를 구했어야 했다.

그러나 이날 기자회견에서 노 대통령은 일말의 미안함이나 사과의 기색을 찾아 볼수 없었다. 그는 “이제 한국이 제재와 압력이라는 국제 사회의 강경 주장에 대해 대화만 계속 하자고 강조할 수 있는 입지가 없어졌다. 상황은 한국의 역할이 축소되는 쪽으로 급격히 변하고 있다. 이건 객관적 상황이다. 포용정책이 북핵 문제 해결에 유효하지 않았다는 평가가 거세게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이건 한나라의 안보를 책임진 대통령의 발언치고는 다소 엽기적인 어투와 발언이다. 우선 핵실험 문제를 자신과 상관없는 제3자의 문제처럼 얘기한다. 내가 듣기에는 대통령의 발언보다는 무슨 라디오에 나와서 떠드는 시사 평론가 얘기처럼 들렸다.

게다가 노무현 정부는 9일 북한 핵실험에 대한 6개항에 걸친 성명을 내놨다. 그런데 이 성명에는 방사능 낙진이나 이와 관련된 부분에 아무런 언급이 없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겠다’고 약속한 사람이다. 그런데 한국의 적대국에서 핵실험을 실시했는데 정부가 자국민에게 방사능 낙진 위험에 대해 일언반구 없는 것은 납득하기 곤란하다. 아무리 지하에서 행한 핵실험이라고 지하수가 방사능에 오염될 수 있다. 이건 직무유기를 떠나 ‘기본이 안돼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끝으로 노대통령은 기자회견하는 동안에 간간히 웃음을 지어보였는데 도대체 무슨 경사가 났다고 웃는가. 한민족이 세계 9번째로 핵무기를 개발해서 기쁜가 아니면 ‘북한의 핵무기는 자위용’이라는 자신의 말이 생각나서 웃는가. 청와대는 한번 그날 CNN에 나왔던 부시대통령, 아베 총리, 후진타오 총리, 푸틴 대통령의 얼굴을 한번 봐라. 모두 핵강국이고 강대국들이지만 북한 핵문제를 얘기할 때는 심각한 표정이었다. 그런데 이제 김정일의 핵인질에 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웃다니 기가막혀 말이 안나온다.

최원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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