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경의조기유학돋보기] 주입식 교육, 미국도 예외 아니더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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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매우 넓다. 더구나 지방자치제 때문에 주.시별로 교육제도가 달라 어느 한 곳만 보고 '미국은 이렇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 아이들이 다녔던 미국 동부의 한 공립 초등학교에 한정해 미국 초등교육에 대한 오해 몇 가지를 적어 보고자 한다.

처음에 우리 가족을 놀라게 한 것은 '숙제 폭탄'이었다. 흔히 미국 초등학교에는 숙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한국보다 숙제가 훨씬 더 많고 엄격했다. 물론 저학년은 숙제가 거의 없지만 고학년의 경우 예체능 과목을 뺀 나머지 주요 과목들은 매일 숙제가 있어 미국 아이들도 한두 시간을 반드시 할애할 정도였다. 더구나 영어를 잘 못하는 우리 아이는 네다섯 시간을 낑낑거려야 겨우 끝낼 수 있었으니, 가히 숙제폭탄이라 부를 만했다. 학교 규칙상 과목당 숙제를 세 번 안 해가면 그 과목은 낙제가 되기 때문에 울면서라도 꼭 해가야 했다.

두 번째로 우리를 괴롭힌 것은 매주 몇 개씩 치러야 했던 '시험'이었다. 수시로 보는 수학시험은 차치하고라도 사회, 과학, 영어 단어와 스펠링, 그리고 읽은 책에 대한 내용과 단어 뜻을 묻는 독해시험 등이 줄줄이 있었다. 비록 형식은 쪽지시험이었지만 우리처럼 중간, 기말고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시험 점수를 모아 기말성적을 내기 때문에 어느 한 시험도 대충 치를 수가 없었다.

또한 미국 교육이 완전히 주입식에서 벗어난 것도 아니었다. 물론 미국 학교는 한국 학교에 비해 가르치는 과목 수나 학습 양이 적다 보니 다양한 시청각 교재를 사용해 세세하게 가르치고 토론식 수업이나 참여 수업도 많이 한다. 하지만 자주 치러지는 시험을 위해 교과서나 나누어준 인쇄물들을 모조리 암기해야 한다는 점이나, 학년에 관계없이 매일 반복해 풀어야 했던 수학 연산 문제지들을 볼 때마다 한국의 교육과 별 차이가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미국의 교육방식이 많은 내용을 지겹게 가르치는 대신에 다양하고 재미있게 습득할 수 있게 해주고, 점수로 아이의 기를 죽이지도 않으며, 일찍부터 아이가 가진 적성을 계발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는 좋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의 장점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미국에서도 피땀 어린 공부가 선행되어야 한다.

김희경 '죽도 밥도 안 된 조기 유학' 저자.브레인컴퍼니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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