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따라잡기] ① 핵실험 도박의 노림수와 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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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중앙일보 정치부 이양수 기자입니다.

핵실험을 끝내 감행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핵도박 노림수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핵실험을 한 번 하는 것만으로 상황이 끝나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먼저 이번 핵실험 날짜는 북한 외무성이 예고 성명을 낸 지 엿새만입니다. 핵실험 선언을 둘러싸고 각국 사이에 협상 테이블이 놓여지기도 전에 전격적으로 행동했습니다.

그렇다면 북한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압박을 무릅쓰고 핵실험을 감행한 진짜 속셈은 무엇일까요. 우선 북.미 양자대화와 대북 금융제재 해제의 요구를 일축하는 미국을 압박하기 위한 카드로 분석됩니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 마당에 무슨 협상이냐구요. 여기에 김정일의 진짜 노림수가 있습니다.

요약하면 핵실험 자체를 카드로 써먹는게 아니라 핵실험 이후의 후속조치들을 양파껍질처럼 쪼개 단계별로 나눠 대미협상, 남북 관계에 활용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여집니다.

예컨대 북한이 핵실험 뒤 다음 수순으로 '6자회담에 복귀하겠다'고 선언하는 상황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핵보유국을 기정사실로 굳힌 다음 핵확산 방지를 명분으로 내세워 핵물질 이전 금지협상과 핵군축 협상을 하자고 제안하는 것입니다.

북한은 이미 3일 발표한 외무성 성명에서 "절대로 핵무기를 먼저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핵무기를 통한 위협과 핵이전을 철저히 불허할 것"이라며 다음 수순을 암시했습니다.

그럴 경우 미국과 국제사회는 어떻게 대응할까요. 미국은 일단 강경 일변도입니다.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차관보는 6자회담의 수석대표이자 주한 미 대사를 지낸 한반도 전문가입니다. 그는 이미 "북한을 핵보유국으로서 인정하지 않겠다"고 발언한 바 있습니다.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핵실험을 하게 되면 우리는 다른 세상에 살게 될 것"이라고 강력하게 경고했습니다.

이런 발언들은 핵보유국으로서 북한 체제의 생존을 보장치 않겠다는 외교적인 표현입니다. 수천여 기의 핵 미사일을 가진 옛 소련이 허무하게 붕괴했던 상황을 상상해 보면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핵보유국이 됐다는 것과 김정일 체제 유지가 반드시 필요충분조건이 아닐 수 있습니다.

미국.일본은 각종 경제 제재는 물론이고 해상봉쇄, 유엔 차원의 강력한 제재를 주도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한국 정부도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사업 등 대북 경협 사업을 재검토하는 게 불가피해졌습니다.

더욱이 북한 체제의 오랜 후견인 역할을 해온 중국이 배신감을 느끼면서 등을 돌릴 공산이 큽니다. 김정일 정권은 핵보유국이라는 간판을 얻겠지만 자칫 사면초가의 체제 위기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핵무기가 체제 안전을 보장할 것인지, 체제 붕괴를 촉진할 것인지 그 어느 쪽도 우리에게는 쉬운 과제가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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