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종 서울시 교육감 "평준화 대안 없는 교육부 정말 답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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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유인종(劉仁鍾.73) 서울시교육감은 요즘 경제 부총리.서울시장 등 힘 있는 사람들과 큰 싸움을 벌이고 있다. 서울 강북지역 교육 여건 개선을 위해 자립형 사립고나 과학고.외국어고 등 특수 목적고를 세우려는 재정경제부와 서울시의 계획에 사사건건 '비토'를 놓고 있는 것이다.

최근 도마에 오른 '평준화 체제'유지를 위해 총대를 메겠다면서 한 발짝도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가 이런 뜻을 굽히지 않는 한 이들 학교를 세워 강남에 쏠린 교육 수요를 분산하겠다는 재경부의 구상은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劉교육감은 왜 이처럼 강경한 걸까. 고집인가, 아니면 소신인가.

'공교육의 수호자' '교육계의 변화 열망을 가로막는 고집불통'. 이처럼 사뭇 다른 평가를 받고 있는 劉교육감을 23일 오후 단독으로 만나 속내를 들어 봤다.

그는 한 시간여에 걸친 인터뷰 내내 경제부처를 성토했고 교육인적자원부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평준화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것 같다.

"정도(正道)를 가야 하는 것 아닌가. 집값은 일시적이지만 교육은 영원한 거다. 내년에 (교육감 자리를) 그만두니까 그냥 (재경부 등의 요구대로 강북지역에 특목고 등 설립을) 한다고 하면 되지 않을까 하겠지만 내 양심엔 못 한다. 이렇게 무책임하게 나갈 수 없다. 특목고 하나를 터주면 (공교육이) 둑 터지듯 무너진다."

-너무 고집이 센 것 아닌가.

"허참 (이 대목에서 양복 바지를 무릎 위까지 걷어올렸다). 강남 집값 잡는 것하고 자립형 사립고를 강북에 세우는 것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재경부 시각이 잘못된 것이다."

-임기 8년 동안 사사건건 반대만 한다는 지적이 있다.

"학교가 입시기관으로 변질되는 일을 막았기 때문에 이 정도라도 유지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나아졌나. 학부모들의 사교육비는 더 든다.

"초등학교에서 등수 없애고, 시험 없애면서 세계적인 수준이 됐다. 중.고교는 입시 교육 때문에 어려움에 봉착했을 뿐이다. 교육과 보육을 통합한 에듀케어도 실시했고, 영재교육도 실시했다. 나는 정도를 가고 있는 것이다. 내가 한 일은 절대 뒤집히지 않는다."

-교육감이 자꾸 못 하겠다고 버티니까 경제부처가 일반자치와 교육자치를 통합하자는 제안을 하지 않나.

"내 그럴 줄 알았다. (경제부처는) 원래부터 통합 얘기를 하고 싶었을 테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주도하고 있는 것 다 안다. YS 때부터 이들이 주도해 왔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면 경제부처 사람들의 사고가 잘못됐다는 건가.

"세계 교육 추세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을 보자.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내건 교육개혁이 '어떤 아이도 뒤처지지 않는다(No Child left behind) '아닌가. 바닥을 끌어올리자는 거다. 왜 우리는 거꾸로 위만 끌어올리려 하느냐."

-좋은 학교를 지어주겠다는 게 뭐가 잘못인가.

"지금 평준화의 문제는 아주 잘하는 아이와 아주 못하는 아이를 배려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이런 상황에서 특목고 같은 학교를 세운다는 것은 일부만 건지고 나머지는 버리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잘못된 것이다. 아이들을 학교로 갈라 놓지 말고 프로그램으로 갈라 놓자는 거다."

-프로그램으로 학생을 가른다니?

"먼저 필수과목을 지금의 절반으로 줄인다. 그리고 학년제를 폐지하고 단위제를 실시한다. 단위를 이수한 학생은 학년과 관계 없이 윗 계단으로 올라간다. 처지는 학생은 아랫계단에 남는다. 그러면 학교를 세우지 않고도 수준별 교육을 할 수 있다."

-그럼 왜 그런 계획을 실행하지 않나.

"교육인적자원부에 여러 차례 얘기했다. 하지만 관료들이 들을 생각을 않더라. 국가적 차원에서 교육과정을 뜯어고쳐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작업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교육부가 가만 있다고 손 놓고 있을건가.

"오죽하면 임기 얼마 안 남겨둔 내가 나서서 (특목고 설립 등에 대해) 안 된다고 했겠는가. 나도 (교육부를 보면)답답하다."

-강남 대치동을 중심으로 사교육 폐해가 심해지고 있는데 한숨만 쉴 건가.

"시간이 걸리니까 (내가) 지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결국 프로그램 중심으로 학교 교육의 변화를 꾀하면 된다. 시간이 안 걸린다고 입시기관으로 변질할 것이 뻔한 학교들을 세우는 우를 범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앞으로 경제부처들의 주장이 실현될 것이라고 생각하나.

"그들이 꼬리를 내릴 것이다. 정도를 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전교조가 자립형 사립고 등의 설립에 절대 반대하는데 전교조와 교육감의 코드가 일치하는 것 같다.

"전교조와 같은 편은 아니다. 그들보다 조금 앞선다. 초등학교의 교육과정 개편 등에서 더 개혁적이란 말이다."

-지금 교원단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전교조.한국교총 등 교원단체들이 자중하면서 공부 좀 했으면 좋겠다. 학급당 학생수를 35명으로 줄였는데도 선생님들은 50명이었을 때처럼 가르친다. 변화가 없는 것이다. 제발 공부 좀 하자."

강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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