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의 주체가 움직일때(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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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노대통령의 정상외교 다음에 할 일
노태우대통령의 미소 지도자를 상대로 한 연쇄적인 정상회담은 동북아의 새로운 평화질서 구축과 한반도의 안정 및 남북한 통일의 발판을 마련하는 역사적 외교성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러한 외교적 성과는 지금 시점에서는 원칙과 가능성이 제시된 단계이므로 이를 실현하는 구체적 방안들이 면밀히 검토,제시되고 추진되어야 그 의미를 살릴 수 있다. 한소 정상회담에서 비롯된 충격과 흥분은 이제 일시적 효과로 접어두고 차분하게 회담 결과를 점검하고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
한반도의 통일이나 평화정착과 관련해 볼 때 지금만큼 국제적 환경이 좋은 여건은 일찍이 없었다. 문제는 이러한 분위기를 남북한 당사자가 어떻게 활용하여 능동적으로 통일의 길을 다져나가는가에 달려있다.
한소 정상회담은 노대통령이 지적했듯이 소련의 영향력을 기대하고 평양으로 가는 문을 여는 우회로로서의 선택이었다. 미국이나 일본의 북한접촉을 권장해 개방을 유도하겠다는 정부의 구상도 그러한 국제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방편중의 하나일 수밖에 없다. 이번 노대통령의 외교활동은 그와같은 분위기 조성에 큰 기여를 했다.
이러한 여건의 조성과 함께 최근 통일방안중 하나로 독일식의 소위 「2+4」 방식이 거론되고 있다. 2개의 분단 당사자와 배후 4개국의 협조로 벌이고 있는 통일작업이다.
우리와 관련해서도 남북한 당사자와 미·일·중·소 4개국의 협조로 통일분위기를 다지자는 논의는 외형적인 구도에서는 비슷하게 볼 수 있다.
그러나 독일의 경우는 배후 4개국의 역할보다는 동서독 당사자들이 오랜 접촉과 교섭을 토대로 한 자발적인 의지가 결정적으로 통일에 기여하고 있다. 주변국의 역할은 부차적일 따름이다.
따라서 지금 단계에서 우리에게도 「2+4」 방식으로 가기 위한 준비단계로서 독일의 경우처럼 남북한 당사자가 주체로 나서 직접 통일의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남북한 당사자에 의한 남북한 문제해결원칙은 미국이나 일본·소련·중국 등 주변국가들이 모두 동의하고 있는 조건이기도 하다.
최근의 동북아의 세력 재편추세와 관련해 구한말 이들 4개 열강의 경쟁결과로 우리가 겪었던 악몽을 되새기는 의견도 있을 수 있다. 우리가 겪은 비극은 당시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던 우리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었다는 것을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남북한이 주체적으로 통일여건을 위한 노력보다는 또다시 주변 강국들의 영향력과 역할에 크게 의존하려고 한다면 그러한 역사적 망령을 떨쳐버릴 수 없을 것이다.
이번 정상외교의 역사적 의미를 강조하는 것은 이 행사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길을 열었다는 점 이외에도 바로 그와같은 교훈이 우리에게 주는 경고의 무게를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 뜻에서 「2+4」의 구조를 활성화시킬 주체가 이제는 주변국이 아니라 바로 남북으로 떨어져 살고 있는 우리 스스로임을 다짐해야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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