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에 공 다툼은 금물/한소 정상회담은 결집된 힘으로(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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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외교가 국내 정치적 목적이나 특정인의 입장을 위해 이용되거나 왜곡돼서 안됨은 외교의 상식이다.
외교는 바로 국익과 직결되기 때문에 여야간에 시샘 대상이 돼서도 안되고 정치적 이유때문에 우리의 교섭태세에 혼란을 일으키거나 우리의 속마음이 때이르게 노출되는 언동이 나와서도 안된다.
지금 우리는 현대사의 일대 사건이라 할 만한 한소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여기에 혹 지장을 줄지도 모를 어떤 일도 내부적으로 벌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그럼에도 최근 정계를 비롯한 일부 당국자들의 언동을 보면 한소 정상회담의 성사를 두고 다시 「공다툼」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이번 회담이 이루어진 막후경위를 두고 어떤 측은 특정인의 방소에서 상당한 기반이 마련된 것처럼 흘리고 또 어떤 측은 비밀 잠행교섭으로 돌파구를 연 것처럼 암시하기도 한다.
우리는 누가 어떤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역사적인 한소 정상회담이 열리게 됐는지 그 경위는 알 길이 없다. 국내 언론에서는 청와대가 주도했다느니,모모씨가 공이 크다느니 하는 얘기가 나오고 미정부의 주선이라는 외신도 있어 현재로서는 정설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회담성사의 막후경위보다는 한소 정상회담이 열리게 된 사실이 중요하고 이 회담의 성공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이제와서 관련당국자들이나 정치인들이 할 일은 교섭 성공의 공치사보다는 가장 냉철한 판단과 유효한 내부태세의 확립으로 정상회담에 임하고 회담을 성공적으로 끌어가는 일이 돼야 할 것이다.
불필요한 생색내기에 관심을 쏟는 나머지 만일 사실과 다르게 자기의 역할을 과장하다가는 진상을 알고 있는 소련측이 이를 앞으로 전개될 외교흥정에서 역이용할 가능성을 우려한다.
가령 한소 정상의 연내 상호방문설같은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어느 정도 사실에 기초한 것인지 알기가 어렵고 또 이 단계에서의 그런 발설이 당국과의 사전협의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경솔한 짓이다.
또 소련에 대규모 차관을 제공할 것이란 보도가 나왔지만 이 역시 당국자간에 사전 조정,합의된 방침인지 불투명하다. 정계에서는 또 나름대로 이번 한소 정상회담의 국내 정치적 효과를 놓고 설왕설래가 있는 듯이 들린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아직은 심각하게 생각하고 싶진 않지만 한소 정상회담이란 엄청난 국가대사에 임하는 진지한 자세라고는 보기가 어렵다. 지난번 김영삼씨의 방소를 전후해 있은 민자당 내부의 공다툼현상같은 것이 이번에 또 벌어져서는 결코 안될 일이다.
각자가 자기 분야에서 성공적 외교수행에 도움될 역할을 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종합적인 조정과 최종적인 판단은 역시 정부로 일원화돼야 할 것이다. 불필요한 공다툼이나 자기과시용 발설은 엄격히 자제되지 않으면 안된다. 공이 있으면 사후에 반드시 알려질 것이고 자랑은 그때 가서 해도 늦지 않다.
아직 정상회담이 열리지도 않았고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지도 미정인 상태에서 경솔한 언동은 대사를 그르칠 수도 있다는 책임감을 당사자들은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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