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투기'에 관한 두가지 우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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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장면 1

1980년대 초반 한때 토룡탕(土龍湯)이 강정식품으로 유행한 적이 있었다. 토룡은 지렁이를 점잖게 부르는 한자말이다. 지렁이가 몸에 좋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토룡탕집이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났다. 낚시 미끼로나 쓰이던 자연산 지렁이만으론 폭주하는 수요를 당하지 못하게 됐고, 지렁이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드디어 지렁이 양식업이 태동했다. 벼 모판 같은 지렁이 양식용 기구가 개발됐고, 비닐하우스에서 대량 양식이 시작됐다.

지렁이 모판을 사두면 떼돈을 번다는 소문이 돌면서 여윳돈을 가진 사람들이 지렁이 양식업에 뛰어들었다. 이들은 직접 지렁이를 키우지 않고 지렁이 모판의 소유권만 사고 팔았다. 지렁이 모판의 손바뀜이 빨라졌고, 거래단위도 커졌다. 투기적인 가수요가 몰리면서 지렁이 값은 더욱 가파르게 올랐다. 양식 지렁이는 이제 토룡탕 수요와는 관계없이 그 자체로 투기적 거래의 수단이 됐다.

그러나 지렁이 투기의 종말은 허망하게 찾아왔다. 보건당국이 토룡탕이 인체에 해로울 수 있다는 발표를 하자 토룡탕을 찾는 발길이 뚝 끊어졌다. 문을 닫는 토룡탕집이 속출했다. 실수요가 사라진 지렁이 양식업은 설 땅이 없어졌다. 지렁이 투기에 막차를 탄 사람들은 막대한 손해를 보고도 어디에 하소연할 데가 없었다. 비닐하우스 속에서 자라던 양식 지렁이들은 아무도 돌보지 않은 채 내팽개쳐졌다.

#장면 2

2001년 말 서울 강남구 대치동 주변의 아파트가 살기 좋다는 소문이 퍼졌다. 도심에서 멀지 않으면서 주거환경이 좋은 데다 힘깨나 쓰는 유력 인사들이 모여살아 그곳에 산다는 것만으로도 왠지 어깨가 으쓱해진다는 것이다. 교육열이 남다른 학부모들 사이에선 대치동 학원에 아이들을 보내면 유명대학에 들어가는 것은 떼어논 당상이라는 이야기가 오갔다. 이곳으로 이사오려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당연히 집값이 뛰기 시작했다.

서울 강북이나 수도권의 신도시에 살던 이들 중에는 살던 집을 팔고 전세로 오겠다는 사람마저 생겨났다. 여기다 낮은 층수의 오래된 아파트를 헐고 고층아파트를 지으면 그만큼 아파트 평수가 늘어나 재산가치를 크게 불릴 수 있었다. 아파트 매물은 나오기가 무섭게 팔려나갔고, 웃돈을 주고라도 이곳의 아파트에 들어가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그 사이 아파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여윳돈을 가진 사람들은 너도 나도 강남으로 몰려들었다. 마침 금리도 낮고 은행에서 집값을 후하게 쳐준다니 빚을 내서라도 강남에 아파트를 사겠다는 이들이 늘어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르는 판이었다. 강남의 아파트값은 이제 더 나은 교육이나 쾌적한 생활을 꿈꾸는 소박한 바람만으로는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로 올랐다.

강남 아파트값에 거품이 끼었다는 염려 섞인 지적이 나왔지만 한번 기세가 오른 강남 아파트값의 상승세를 꺾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드디어 강남 집값은 무슨 일이 있어도 오른다는 '강남불패(江南不敗)'의 신화까지 생겨났다.

이 즈음 강남에 관한 몇 가지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들이 나돌기 시작했다. 대치동 학원에 다닌다고 해서 좋은 대학에 간다는 보장이 없다는 얘기가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입에서 새어나왔다. 생활여건이 생각만큼 썩 좋지 않다는 말도 들렸다. 평수를 넓힐 요량으로 집을 허물고 새로 짓는 일이 어렵게 됐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여기다 정부가 강남 집값을 떨어뜨릴 엄청난 묘책을 준비 중이란 소문이 들려 왔다.

강남의 집값에 대한 우화의 마지막 장이 어떻게 끝날지 궁금해진다.

김종수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