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차탄 입주자의 항변(촛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수천만원씩 챙긴 투기꾼들은 모두 꽁무니를 빼고 없는데 우리들만 데려다 조사하겠다니 말이나 돼요.』
『38평짜리를 지어놓고 임대아파트라고요. 처음부터 투기는 일어나게 돼 있었어요.』
30일낮 목동 시영임대아파트 불법전대 혐의로 검찰의 소환장을 받은 주민 2백여명이 이 아파트 8단지 노인정에 모여 목소리를 높이며 성토하고 있었다.
『서울시가 그동안 입주자실태조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바로 불법전대를 조장한 것입니다.』
이 지역출신 야당의원의 주장에 요란한 박수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온다.
10년 전세살이 끝에 87년 어렵게 프리미엄 3백만원을 주고 20평 아파트를 전대받아 살고 있다는 홍모씨(54ㆍ여)는 행여나 「길바닥에 나앉게되는 불행한 일」이 닥치지 않을까 공포(?)에 까지 질린 표정이다.
『7년전 분양신청을 했다가 애가 3명이나 있다고 우선순위에서 밀렸을 적엔 자식많은게 한없이 서러웠어요. 그래서 50이 다된 영감을 떼밀어 불임수술까지 받게 했지요.』 홍씨는 서러운듯 금세 눈에 이슬이 맺힌다.
『우리 모두가 일관성 잃은 졸속행정의 희생자들 입니다. 처음부터 단속을 철저히 하든지,아니면 조용히 놔두든지….』
검찰에서 조사를 받느라 시달리고 막 돌아왔다는 고모씨(59)는 서울시에 그 화살을 돌렸다.
그러나 근심스레 앞날을 점쳐보던 대부분의 입주민들은 이 자리에서도 뾰족한 수를 찾아내지 못한채 도망치듯 총총걸음으로 발길을 되돌렸다.
5공정부가 「무주택시민에서 내집마련의 꿈을 실현시켜주기 위해」라는 이유를 붙여 건설했던 대표적 전시행정의 표본,목동아파트단지.
그 이후 이 아파트단지는 무주택 영세시민과는 거리가 먼채 투기꾼의 호재가 돼 넘기고 넘어가며 막차를 탄 입주자들만 곤욕을 치르는 현실은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남정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