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물지 않는 「광주 상처」/이철호 사회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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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시위대는 끊임없이 금남로를 향해 몰려들었다. 경찰의 최루탄저지에 산발적인 숨바꼭질시위는 19일 오전 2시까지 계속됐다.
『광주학살 배후조종 미국인을 처단하라』­. 절규에 가까운 시위대의 함성이 어둠이 깔린 도심을 뒤흔들었다
광주민주화운동 10주기를 맞은 18일. 광주는 다시 용광로처럼 끓어올랐다.
1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망월동 묘역에 입힌 잔디도 뿌리를 내려 그날의 아픈 상처를 푸르름으로 덮고 있는데 광주는 왜 다시 타오르는 것일까.
18일 정부는 『희생자마다 1억5천만원의 보상금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에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현실적인 보상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진상을 밝히는 것이다.』 『총맞아 죽은 사람은 수백명인데 총을 쏘도록 시켰다는 사람은 없다.』 시민들은 한결같이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진상규명이 없는 한 돈으로도,최루탄으로도 광주를 잠재울 수는 없다』고 외쳤다.
문병란교수는 5·18 10주기 추도시에서 「…살아있는 우리가 부끄러운 오늘/다시 금남로에서 폭도가 되어야 한다면 폭도가 돼버리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정부는 『정치적으로 광주문제는 종결됐다』며 광주시민들에게는 공허하게 들리는 말만을 되풀이한 채 광주의 아픈 상처를 치유해 달라는 시위대의 행진을 최루탄으로 해산시키려 애쓸 뿐이다.
과연 진상은 밝혀진 것일까. 상처는 아물어들 수 있을 것인가.
「다시 금남로에서 폭도가 되어야 한다면 폭도가 돼버리고 싶다」는 가슴아픈 자책감이 해마다 5월이면 거센 함성이 되어 거리를 덮는데 정부의 「종결선언」은 과연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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