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을 다지는 하나의 교훈(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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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동·서독이 통화의 단일화및 경제·사회 공동체 건설에 관한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통일의 길은 큰 관문을 넘어섰다. 40년 넘게 체제와 이념을 달리하며 경쟁관계에 있던 분단국가가 평화적으로 통합되는 과정을 부러움과 함께 지켜보며 우리는 남북한 관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양독의 경제·사회제도를 통합하는 기본 법규가 되는 이 조약에 따라 동독은 사실상 서독의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흡수·합병되게 됐다. 이 합의로 통독의 의지는 거보를 내디뎠지만 이에따라 동독시민들이 현실적으로 겪게 될 정신적 갈등과 경제적 고통은 심각한 숙제로 남게 된다.
시장경제원리에 따라 동독기업의 대부분이 정리되면서 당장 50만 내지 65만명의 실업자가 예상되고 40년 넘게 익숙해왔던 가치관을 상실하고 새로운 사회규범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서독으로서도 통일에 따른 경제적 부담은 총체적으로 서독의 1년 국민총생산에 맞먹는 금액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 동독의 재정적자와 대외 채무를 메워주어야 하고 사회보장문제도 해결해 주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노후한 동독 산업시설,사회간접자본을 서독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드는 비용도 만만찮다.
그런 비용은 결국 서독국민의 세금으로 부담할 수밖에 없다. 세금을 더 내야 되고 그만큼 경제적 고통이 뒤따르게 될 것이다.
이러한 어려움때문에 지난해 동독시민의 대탈출이 시작되면서 통독 가능성이 처음 대두됐을 때 서독정부는 양독이 통일되려면 최소한 10년간의 작업이 필요한 것으로 보고 장기대책을 마련했었다.
그토록 어려운 상황을 급박한 주변변화 가운데서도 통일의 문턱까지 유도할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쌓아온 양독관계 덕분에 가능했다. 상호이해와 신뢰를 그동안의 양독관계는 구축해 놓았던 것이다.
동독은 이념이나 체제면에서는 완고한 공산국가였지만 분단 40년동안 서독과 끊임없이 교류해 왔다.
경제교류는 물론 상호 친지방문·서신왕래·전화통화등에서부터 문화교류에 이르기까지 상호간 신뢰를 굳혀왔다. 상호간의 이질화가 아니라 동질화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주변정세가 통일에 맞게 변했을 때 그 기회를 포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서독에서도 물론 동독의 출판물등 모든 정보에 모든 국민이 자유롭게 접할 수 있었고,동독에서 조차 서독의 TV및 라디오방송을 국민의 80%이상이 청취하는 데 제한을 가하지 않았다.
독일과 한반도는 비슷한 점보다는 다른 점이 더 많다. 그러나 양독이 급속히 통일로의 길을 치닫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오랜 시간을 두고 상대적으로 국력이 우세한 쪽이 관용과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교류를 유도하고 동질화작업을 추진해 나갈 때 언젠가는 통일에의 기회를 포착할 수 있다는 교훈을 우리는 부러움속에서 다시한번 재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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