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KBS에 4년간 210억 지원…일부 프로그램 '주문 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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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정책 홍보를 위해 KBS에 방송제작 지원금(협찬금)을 지급하면서 프로그램 제작 단계에서부터 방영에 이르기까지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다.특히 KBS에 대한 정부의 이 같은 방송제작 지원금은 현 정부 들어 3년 사이 3배로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고 동아일보가 보도했다.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이재웅 의원이 27일 입수한 '경제 매거진 Upgrade KOREA 제작 및 방송 협력 계약서'에 따르면 국정홍보처는 올해 6월 한국의 경제정책에 관한 해외홍보 방송을 위해 KBS에 3억9600만 원을 주고 '경제 매거진 Upgrade Korea' 프로그램을 주 1회, 30분 분량, 30편을 공동 제작하기로 계약을 체결했다.

국정홍보처는 KBS의 방송 제작과 편집 등에 개입할 수 있는 규정을 계약서에 포함시켰다. 이 계약서에 따르면 KBS는 프로그램 아이템 선정 및 구성안 시안을 작성한 뒤 정부 관계자, 출연 연구기관 관계자에게 자문해 프로그램을 제작해야 한다.

이 프로그램은 위성채널인 KBS월드를 통해 6월 말부터 12월 말까지 방송된다.

또 국정홍보처가 요청하면 KBS는 영상물을 재편집해 그 내용을 반영한 뒤 제공하게 돼 있다.

이 의원은 "국정홍보처뿐만 아니라 여성가족부, 보건복지부, 농림부 등 다른 정부 부처들도 정책 홍보를 위해 지원금을 주고 KBS의 '특집'이나 '기획'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현 정부의 KBS에 대한 방송제작 지원금은 2003년 28억5586만 원에서 2005년 88억9204만 원으로 3배 이상으로 늘었다. 올해는 8월 말 현재 51억1883만 원이 지원돼 2003년 이후 지금까지 총지원금은 210억4154만 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국정홍보처가 66억여 원을 지원해 정부 부처 가운데 지원금이 가장 많았다. KBS는 국정홍보처의 지원금으로 신행정수도 후속대책, 경제 자신감 강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다룬 프로그램을 공동 제작해 방영했다.

이 의원은 "정부 지원금을 받아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것은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할 공영방송 KBS의 정체성은 물론 프로그램의 자율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KBS는 방송제작 지원금과는 별도로 지난해 경영 악화 등을 이유로 국고보조금을 요청해 올해 국고보조금 43억 원과 방송진흥기금 61억여 원을 받을 예정이다. 2004년 637억 원의 적자를 냈던 KBS는 지난해 576억 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디지털뉴스[digit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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