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도심 시위 방치해 온 경찰의 뒤늦은 지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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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경찰청이 대도시 도심 지역에서의 대규모 시위를 엄격히 관리하라고 일선 경찰에 지시했다. 상당한 교통 불편이 예상되면 법에 따라 허가하지 말고, 허용해도 시위대가 도로 준수 등 법을 지키도록 했다. 불법 집회.시위자에 대해선 즉심 회부 등 사법처리도 한다고 한다. 경찰은 왜 그동안 이런 시위에 뒷짐을 지고 있었는가. 이로 인한 시민의 불편, 그리고 무질서가 끼친 사회적 악영향에 대한 책임의식을 못 느끼는가.

요즘 우리는 '시위 공화국'이라고 할 정도로 시위가 많다.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하루 평균 27건의 집회.시위가 열렸다. 노무현 정부 들어선 도로.거리 시위가 부쩍 늘었다. 동아시아연구원(EAI)이 1989~2005년의 주요 시위 5400건을 분석한 결과 도로.거리 시위 비율이 2000년 12.9%에서 2003년에는 82.5%로 증가했다. 이런 현상은 갈수록 더하다. 요즘 주말이면 서울 도심은 각종 대규모 시위로 심한 몸살을 앓는다. 지난 주말만 해도 미군부대 평택 이전 반대 시위, 이라크 자이툰 부대 철수 요구 시위, 교육대 통폐합 반대 시위 등이 벌어졌다. 극심한 교통체증으로 가을 나들이에 나선 시민들은 큰 불편을 겪고, 가뜩이나 경제난에 허덕이는 상인이나 택시 기사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그런데도 경찰은 지난해 말 농민 2명이 시위 도중 숨진 사건으로 경찰청장이 경질된 뒤 수수방관하고 있다. 심지어 경찰이 차로 일부를 막아 시위대를 안내하거나, 시위대의 불법 차로 점거까지 눈감고 있을 정도였다. 쾌적한 생활을 누려야 할 대다수 시민의 권리는 실종된 지 오래였다. 이러니 시위대가 버젓이 경찰차에 낙서할 정도로 공권력은 조롱거리가 됐다.

사실 이번 경찰청 지침 역시 새로운 것이 아니다. 집시법에 있는 내용이다. 그동안 경찰이 법을 집행하지 않았을 뿐이다. 직무유기다. 시민의 안전과 생활을 지키는 것은 경찰의 존립 근거다. 데모대와 코드가 맞는 정권의 눈치를 보면서 법 집행을 소홀히 한 점을 반성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