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 마종기(1939~ )
추운 밤 참아낸 여명을 지켜보다
새벽이 천천히 문 여는 소리 들으면
하루의 모든 시작은 기적이로구나.
지난날 나를 지켜준 마지막 별자리,
환해오는 하늘 향해 먼길 떠날 때
누구는 하고 싶었던 말 다 하고 가리
또 보세, 그래, 이런 거야, 잠시 만나고…
길든 개울물 소리 흐려지는 방향에서
안개의 혼들이 기지개 켜며 깨어나고
작고 여린 무지개 몇 개씩 골라
이 아침의 두 손을 씻어주고 있다.
혜화동 지나노라면 꼭 생각나는 것 있다. 장욱진과 마해송! 더불어 마종기 선생의 젊은, 아니 어린 시절의 발길을 짐작해 보곤 한다. 한데 벌써 젊은 할아버지가 되신 듯. 무지개에 손 씻고 개울물 소리 흐려지는 방향에 서 있으시니 이 새까만 후배도 숙연하다. 조용한 수묵 중에 무지개만 컬러로 걸어 나와 한층 조용히 '그래, 이런 거야, 잠시 만나…'.
<장석남.시인>장석남.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