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대치동도 피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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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만 거론하느냐. 여기가 무슨 동물원이냐."

교육특구 '대치동'시리즈(10월 17~22일)가 나가는 동안 대치동 주민들로부터 많이 들은 이야기다.

하필이면 대치동에 초점을 맞추게 된 것은 취재팀 입장에서도 안타깝다. 대치동 주민들도 어찌 보면 사교육 열풍의 피해자인데 학원에 중독된 문제 부모처럼 도매금으로 넘어간다면 분통이 터질 일이다.

취재팀은 비난의 화살을 이들에게 돌리고 싶은 생각이 없다.

"병적이건 아니건 대치동이 한국의 교육 현실에서 최선의 선택"이라는 반론처럼 '대치동 신화'는 교육 수요자의 욕구와 동떨어진 부실한 공교육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평준화라는 미명 아래 뛰어난 아이나 떨어지는 아이나 똑같은 수준의 교육을 강요하는 공교육을 이들은 더 이상 신뢰하지 않았다.

학부모와 아이들이 학교보다는 학원을 더 믿는 분위기가 퍼지면서 대치동은 한국 사(私)교육의 메카로 떠올랐다. 많은 교육비를 쏟아붓지만 효과는 예상보다 낮아 '고비용 저효율'의 전형이란 사실도 모른 채 대치동으로 몰리고 있다. 이곳에 합류하지 못한 부모들도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대치동식 교육 모델'의 실상과 허상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탓이다.

두달여 동안 대치동 주민들을 취재한 후 내린 결론은 이들도 교육정책의 피해자일 뿐이라는 것이다. 가해자는 더 좋은 품질의 교육을 바라는 교육 수요자들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교육 당국자들이라는 생각이다.

대치동에 국한된 문제로 넘겨버린다면 망국적인 사교육병은 치유할 수 없다. 이제라도 '좋은 학교, 질 좋은 교육'에 대한 욕구를 풀어 줄 수 있도록 평준화를 보완하는 등 교육의 틀을 다시 짜야 한다. 교육 평등 운운하며 교육 서비스의 질을 높이지 못한다면 부모들의 능력에 따라 아이들의 장래가 좌우되는 불평등만 더 심화될 것이다.

하현옥 정책기획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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