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학문 흡수에 인색" 자성 줄 이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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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이 뭐냐는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이 한 시간도 참선을 안 해봤다."

"인문학자는 고고해서 (다른 걸 하면) 타락하고 변절한 것으로 본다."

인문학 부흥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인문주간' 행사가 26일 이화여대 LG컨벤션홀에서 열렸다. 학술진흥재단과 전국인문대학장단이 주최했고 중앙일보가 후원했다. 이날 학술제에 나온 인문학자들은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에 공감했다. 자성(自省)의 목소리도 컸다. 또 "인문학을 살려야 사회가 산다"는 의지도 다졌다.

◆ "인문학을 망치는 주범은 나 같은 교수"=인문학자들의 자기 반성은 진솔했다. 성균관대 이기동 교수는 이날 "참선이 뭐냐는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이 한 시간도 참선을 안 해봤고, 공자 사상으로 공부한 사람이 전혀 어질지 못한 게 (인문학의) 현주소"라며 "(인문학이) 인품을 향상하는 게 아니라 물질주의적.경쟁주의적 지식을 쌓는 수단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인문학을 망치는 주범은 나 같은 대학교수"라며 "인문학이 위기인 줄 모르고 안주하고 (지식을) 남에게 강요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자기 변신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체절명의 위기"라고까지 말했다.

서강대 임상우 교수도 "남들이 못 알아들을수록 자신은 지고한 가치나 첨단의 기발한 지식을 추구하는 인문학자라고 자위하고 있지나 않은지 우려된다"며 "자부심을 지키려면 자신의 학문 영역을 다른 사람에게 보장해 달라고 외치기만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연세대 신경숙 교수도 원고에서 "대중의 무지함과 저속함을 슬퍼하거나 세태와 영합하여 돈을 말하거나 대중 쪽으로 고개를 돌린 동료 연구자나 교육자들의 전향을 비난하는 데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는가"라고 자문했다.

◆ "인문교육이 모자라는 게 문제"=이들의 위기 탈출 처방은 다양했다. 이기동 교수는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해선 안에서 쪼는 것과 어미 닭이 밖에서 쪼는 게 동시에 일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고려대 윤재민 교수는 "인문학이 자연과학과 사회과학마저 끌어들이는 실천적.이론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국외대 임영상 인문대학장은 "신문방송학과는 모든 학문을 다 흡수하는데 인문학자는 고고하다"며 "인문학도 응용인문학을 과감히 끌어들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김혜숙 교수는 "인문학적 정보가 사회공학적 차원에서 가공될 수 있도록 다양한 분야와 연계한 학제적 프로그램(인문공학)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편 전국인문대학장단은 이날 성명서를 통해 "인문학 진흥을 위해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을 펼쳐야 한다"며 인문학 진흥기금과 교육부총리 산하 인문한국위원회 등의 설치를 제안했다. 인문주간 행사는 30일까지 이화여대.서울대 규장각.서울시립대 박물관 등에서 열린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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