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할 어른을 잃은 사회(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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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어린이날과 어버이날로 이어지는 가정의 달,5월이다. 사랑과 기쁨으로 충만해야 할 찬란한 5월이어야 하건만 왜 우리의 5월은 언제나 혼란과 위기의 5월로 되풀이 되고 있는가.
사랑과 화합으로 뭉쳐야할 사회가 집단적 이기주의와 대결로 팽배해 있고 민주적 질서와 도덕적 개인주의가 정착되어야 할 민주화 3년의 훈련과정에서도 탈법과 대결양상은 사회 구석구석에서 넘쳐나고 있다.
가정이 사회의 축도인한 사회의 이 갈등과 혼란상이 어디서 비롯되고,왜 혼돈의 악순환을 반복해야 하는가를 가정의 달ㆍ어린이 날을 맞아 한번쯤 우리 모두가 자성의 자세로 되돌아 봐야할 것이다.
과연 우리는 어린이들 앞에서 어른다운 모습을 보였는가를 스스로 비판해보자. 어린이에게 있어 사회와 가정은 살아있는 규범의 전형이어야 하고 축적된 지혜와 지식을 다음 세대에게 가르쳐 주는 학습장이어야 한다. 직장 상사로서의 어른이어야 하고 가족질서의 권위로서의 어른이어야 한다.
산업화ㆍ핵가족화의 바쁜 변화속에서 어른의 권위가 사회와 가정에서 송두리째 날아가버린 도덕과 권위의 아노미현상을 우리 모두가 절감하고 있다. 사회엔 존경하는 원로의 숫자가 줄어들었고,도덕적 존경의 대상인 「사회적 어른」이 눈에 띄질 않게 되었다.
집안과 마을과 직장에서 존경받고,그의 권위와 모범을 자신의 것으로 옮겨올 어른의 존재가 사라지고 「어르신네」는 없고 「아저씨」만이 통용될 뿐이다. 어른이란 도덕의 규범이고 질서의 회복자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어른이 어른되기를 스스로 포기함으로써 자신들의 권위와 질서가 허물어져 가고 있다.
가정은 어떤가. 모든 가정에 아버지의 존재는 사라졌고 아빠만이 살아있다. 도덕과 질서의 모범이고,그 집행자여야 할 아버지는 스스로의 자리에서 내려와 오빠와 같이 다정한 아빠로 살기를 바란다.
사회와 가정 속에서 어른과 아버지의 존재가 사라지고 아저씨와 아빠만이 살아있다는 현상은,사회의 기강과 질서를 바로잡는 민주적 기성세대가 없음을 뜻하고,가정의 도덕적ㆍ윤리적 지침이 되어야 할 부모의 가정교육이 사라져가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버릇없고 참을성 없는 어린이,함께 사는 방법을 모르고 경쟁과 이기심만으로 자라나는 어린이가 가정과 학교에서 양산되고 있는 오늘이다. 그렇게 자란 어린이가 청소년이 되고 다음의 우리 미래를 짊어질 젊은세대로 자라나고 있다.
어른과 아버지의 존재가 새삼 되살아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까닭은 가부장사회의 독선적 폭군으로서의 위엄이 부활되어야 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아빠에서 아버지로,아저씨에서 어른으로의 제자리를 찾기 위해 부모의 도덕성과 권위,기성세대의 민주적 질서를 스스로 회복해야 함을 촉구하자는 뜻이다. 가정과 사회를 지키는 엄한 교사로서의 어른의 존재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혼란과 분열의 시점이다. 내 가족,내 새끼만을 내세우는 가족적 이기주의와 내 집단,내 욕구만을 내세우는 집단적 이기주의는 결국 가정과 사회를 경쟁과 분열과 혐오감의 악순환으로 몰아갈 뿐이다.
민주적 질서와 함께 사는 방법을 배울 학습장이 가정과 사회 어디에도 없다. 오로지 경쟁심과 이기주의를 북돋우는 가정이고 사회일 뿐이다.
다정한 아빠와 엄한 아버지,민주적 질서와 도덕의 전형으로서의 사회적 어른의 존재가 가정과 사회에서 되살아나야 함을 가정의 달을 맞아 우리는 새삼 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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