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잘못하고도 언론 탓하는 한심한 풍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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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주동황 방송위원회 상임위원이 지난주 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런데 그가 밝힌 '사임의 변'이 기묘하기 짝이 없다. 그는 "최근 일부 신문이 저의 주변과 신상을 뒤지면서 악의적이고 조직적인 표적 취재를 하고 있다는 소문을 접했다"며 신문들의 표적 취재 때문에 사임했음을 시사했다. 이게 과연 신문학을 전공한 학자 출신 방송위원의 말이 맞는가.

권력과 긴장 관계를 유지하면서 권력을 감시.견제해야 하는 언론의 첫째 임무는 불편부당한 취재와 보도다. 의혹이 있으면 대상이 누구든 철저하고 집중적으로 파헤쳐 국민에게 알리는 것이 언론의 책무다. 아마 주 위원도 학생들에게 이렇게 가르쳤을 것이다.

현 정부의 언론정책을 지지해온 그는 정부에 비판적인 신문들의 도덕성을 공격하는 데 앞장서 왔다. 그런 그가 정작 자신의 의혹에 대한 취재를 '악의적 표적 취재'라고 주장하는 것은 양심 있는 학자의 태도가 아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스캔들이라고 우기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어쩌면 이 정권의 사람들과 발상이 그렇게 똑같은지 모르겠다. 자기들이 잘못을 저지르고도 문제가 되면 '언론 탓'하는 것 말이다.

주 위원의 땅 위장매매 의혹을 처음 보도한 곳은 '일부 신문'이 아니라 KBS다. KBS는 23일 뉴스에서 "주 위원이 지난해 11월 춘천의 땅 1000여 평을 장인으로부터 3억9000만원에 매입했다"며 위장매매 의혹을 보도했다. 여기다가 편법증여.위장전입 의혹도 받고 있다. 청와대의 인사검증 시스템도 문제다. 이 정부는 부동산 문제에서 하자가 있으면 절대로 고위 공직은 안 된다고 큰소리쳤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의혹을 받는 인물이 검증 절차에서 통과했을까. 이러니 코드가 같다는 이유로 눈을 감아주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사실이 이런 만큼 주 위원은 표적 취재라는 요상한 신조어로 자신의 비리를 호도할 게 아니다. 법을 위반한 사실이 있으면 이제라도 솔직히 사과하고 법의 조치에 따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