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이 불안의 진원지여선 안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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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사실상의 방송파업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제작거부와 파행방송이 이제 20일을 넘어섰다. 농성시위와 두차례 공권력투입에 이어 KBS사태는 급기야 장외투쟁으로 번지고 있고 연대 제작거부가 여타 방송으로까지 확산되면서 방송계 전체에 새로운 위기상황을 몰고 올 조짐을 보이고 있다.
방송의 위기국면이 결코 당면하고 있는 사회 경제적 위기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판단아래 우리는 먼저 방송인들의 자제와 화합의 용단을 다시 촉구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3년의 민주화 진통과정속에서 선도적으로 보여주었던 방송인들의 자제와 화합의 호소,설득이 다시 절실한 지금에 와서 방송계 스스로가 혼미와 표류를 거듭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사회의 위기의식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
KBS의 농성시위가 현대중의 파업과 공권력투입의 빌미를 제공하는 간접적 촉매역할을 했다는 점을 환기한다면 최근의 방송계 사태발전이 또다른 사회적 위기국면을 자극할 수 있다는 불길한 예측을 물리칠 수 없다.
따라서 우리가 간곡히 당부코자 하는 것은 「선사장퇴임」이냐,「선방송정상화」냐는 소승적 논리의 주장을 따지기에 앞서 현시국을 위기상황으로 인식하고 이 국면을 벗어날 역할과 기능을 방송계가 주도적으로 맡아나가기 위해 방송의 정상화라는 대승적 결단을 방송인 스스로가 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원의 총의가 사장퇴임을 투표로 결정한 이상 사장의 거취는 주쟁점으로 남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 서사장 자신이 『방송이 정상화되면 스스로 물러날 각오가 되어 있다』는 최근의 심경토로를 보더라도 사장퇴임이 이번 사태의 핵심이 되기엔 이 사회의 위기상황에 비춰 작은 문제일 뿐이다. 정부나 노조나 작은 명분싸움에 매달려 사회 전체를 뒤흔드는 잘못을 저지를 수는 없을 것이다.
이번 KBS사태가 민자당 통합이후 정부가 보여준 여러 악수중 하나라는 여론의 판단과 두차례에 걸친 공권력투입으로 공영방송을 지리멸렬하게 만들었다는 결과에 대해 정부도 이제 뭔가 새로운 해결의 대안을 제시해야 할 때가 되었다.
또 이번 사태의 핵심인 사장선출의 제청권을 지닌 KBS이사회는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하고 공영방송의 사실상 핵심기관인 방송위원회 또한 사태수습과 중재의 기능을 맡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역할과 기능을 하지 못한 무능과 무력의 단체임이 확인된 이상 재편되어야 한다. 또 새로운 사장선임을 위해서라도 이사회와 방송위원회는 그대로 존속할 도덕성마저 없기 때문이다.
방송정상화는 KBS사태의 수습이 될 뿐만 아니라 이 사회의 위기상황을 수습하는 실마리이며 동시에 서사장의 거취문제 해결을 앞당기는 필요조건이기도 하다.
민주화 진통의 역경속에서 방송매체가 보여준 자제와 화합의 선도적 기능이 방송인들의 용단에 따라 거듭 태어나기를 국민과 시청자들은 함께 기대하고 갈망하고 있다.
국민과 시청자들이 방송에 거는 기대는 방송의 정상화라는 형식적 측면을 넘어 이 사회의 혼란과 불안을 해소하는 선도적 기능으로서의 방송역할에 있다. 그 기대와 갈망을 저버리지 않는 공영방송으로서 KBS가 신중한 선택을 하기를 우리는 기대하고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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