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는 게 없다”민자의 자조/전영기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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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출범후 1백여일을 자기들 내부다툼으로 허송한 민자당이 뒤늦게 『민생이 도탄에 빠졌다』며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각종 회의에서는 국민들이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을 의심하고 있다느니,집안싸움이나 하다가 꼴좋다느니,자조와 책임전가의 목소리들이 점점 높아가고 있다.
그러면서 그들이 내놓는 대안이란 『강력한 대응책이 하나의 초점에 맞춰 마련되어야 한다』는 총론일뿐 각론에 가서는 정당의 뿌리,의원들의 성향에 따라 각양각색의 주장이 혼란스럽게 부딪치고 있다.
예컨대 야당체질의 민주계는 폐일언하고 부동산투기의 주범을 대기업으로 몰아 재벌 한 두개는 망하게 할 정도로 가시적이고 철저한 의지표현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민정계와 공화계 일부는 『대기업의 비업무용 토지는 0.4%밖에 되지 않는다』 『행정기술적으로 업무용·비업무용을 판정,추적해 처분케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정부쪽 설명을 이해하려는 태도다.
두 갈래 인식이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다만 이같은 견해차와 대립된 처방이 당내에서 토론을 거쳐 한가지 절충안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데 민자당의 더 큰 고민이 있다.
설사 안을 만들어 내더라도 정권의 책임을 진 집권당의 고민과 신뢰가 담겼다는 믿음을 주기에 불충분한 것이 한 두 건이 아니었다.
이같은 일이 되풀이 되다보니 어느새 민자당내에는 그들의 고민을 구체적인 정책으로 연결시키는 데 자신을 잃은 패배주의적 사고가 움트고 있다.
어쩐지 「구국의 결단」이란 3당통합의 캐치프레이즈를 가장 냉소적으로 체감하고 있는 곳이 민자당 자신들이 아닌가 느껴진다.
그런 가운데 부동산투기ㆍ노사분규만큼은 「국민의 신뢰」를 놓고 겨루는 「마지막 전쟁」이라고 3계파가 입을 모으고 있으니 또 한번 속는 셈치고 지켜볼 일이다.
만약 이번에도 실명제유보나 성장위주경제정책 전환에서 보여 주었듯이 충분한 설득없이 거대여당의 「존재」하나만으로 깔아뭉개고 넘어가려 한다면 민자당은 영영 국민의 신뢰와는 멀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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