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적대관계 획기적 청산/중ㆍ소 국경병력 감축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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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고르바초프 아시아 평화구상 본격시동/막대한 군비 덜게 이념보다 실리선택
중국과 소련이 7천여㎞에 달하는 양국 국경배치 병력을 감축키로 하는데 합의한 것은 30년 적대관계가 청산됐음을 가시화한 획기적인 조치로 평가된다.
지난해 5월 당시 소련 공산당서기장 자격으로 북경을 방문했던 고르바초프는 75만명 수준인 소련의 국경주둔군중 12만명을 감축하겠다고 제의하면서 중국측도 이에 상응하는 감군을 해줄 것을 요청한바 있다.
이번 감군합의는 고르바초프의 대 중국 및 대 아시아 평화구상의 단계적 추진이 일단 성공리에 시작됐다는데 큰 의미를 갖는다.
페레스트로이카의 지속적인 추진과 함께 미국에 대해서도 대폭적인 군비 축소를 제의,세계 각국의 대대적인 환영을 받은 고르바초프로서는 이번에 중국 국경문제라는 또 하나의 현안을 해결함으로써 그의 외교수완을 다시 한번 과시했다.
반면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이를 거부할 대안이 없어 받아들인 고육지책으로 보여진다.
지난 69년 국경에서 있었던 병력충돌의 앙금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상태일뿐 아니라 최근에는 소련의 정치개혁에 따른 이념적 갈등 또한 첨예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중 소 양국간의 불편한 관계에도 불구,의외로 쉽게 감군 합의를 도출해낸 것은 양국 모두 절실히 느끼고 있는 대외이미지개선이라는 공통분모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여진다. 중소 모두가 미국등 주요 서방국들의 경제차원의 지원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와함께 막대한 규모의 군사유지비도 양국에 큰 부담인 상황이어서 감군 합의는 피해갈수 없는 외길인 셈이다.
결국 중소 모두 살아남기 위해 「이념」보다는 「실리」를 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분석은 이번 리펑(이붕)­고르바초프 회담에서 2000년까지 경제ㆍ과학ㆍ문화 분야의 협력기반을 강화해 나가기로 하는 장기 협력협정을 체결한 점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그러나 방소 첫날 만찬연설에서 이붕 총리가 『양국이 처해있는 상황이 서로 다를뿐 아니라 각자의 문제에 대한 견해도 틀리기 때문에 독자적인 개혁과정을 밟아나갈 것』을 천명한 점등으로 미루어 군사ㆍ경제적 협력은 가능하지만 이념갈등은 지속될 것 같다.〈이춘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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