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세 명 중 두 명은 "잘한 일이 하나도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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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임기를 1년5개월 남겨둔 노무현 대통령의 성적표는 참담하다. 국민 3명 중 2명은 노 대통령이 취임 이후 잘한 일이 한 가지도 없다고 생각한다. 중앙일보 창간 여론조사 결과다. 전반적인 평가를 요구하는 질문이 아니다. 무엇이든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 하나만 꼽아 보라는 물음에 '없다'고 답한 사람의 비율이 그렇다. 지난 3년7개월을 송두리째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노 대통령이라고 잘한 일이 왜 없겠는가. 스스로 최고 권력으로서의 권위를 벗어던지며 우리 사회를 바꿔 보려 노력했는데 찾아보면 하나쯤 없을 리 없다. 그런데도 이토록 무참한 평가를 내린 것은 이성적 판단의 범위를 뛰어넘어 분노를 느끼고 있다는 말이다. 일부 응답자는 '개혁정책'(4%), '부동산 정책'(3%) 등을 잘한 일로 꼽았지만 같은 항목을 가장 잘못한 일로 꼽은 응답자가 훨씬 많다. 극소수만을 만족시키는 정책을 추구해 온 당연한 결과다.

민심이 바닥이라는 사실은 5.31 지방선거에서 확인했다. 집권당은 처절하게 패배했다. 그런데도 달라진 게 없다. 선거 패배의 책임을 져야 할 인물을 오히려 중용하고, 국민의 반발을 산 정책을 더 거세게 밀어붙였다. 코드.낙하산 인사는 더 극성을 부린다. 전시작전통제권을 둘러싼 국론 분열, 측근 인사들을 모두 풀어낸 자기 사면(赦免), 4수(修)를 해서라도 코드가 맞는 인물을 밀어붙이겠다는 헌법재판소장 논란… 지방선거 이후 지금까지 무리수에 무리수를 반복하고 있다. "한두 번 선거로 나라가 잘되고 못되는 것이 아니다"(노 대통령)라는 생각으로 민심을 무시한 결과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분명하다. 이번 조사는 노 대통령이 가장 잘못한 일로 '고용 불안'(14%), '부동산 정책'(9%)을, 가장 시급한 해결 과제로 '실업 문제'와 '물가 안정'을 꼽았다. 5명 중 4명이 '경제가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이념과 코드가 아니라 민생경제에 매달려 달라는 호소다. 남은 임기 동안만이라도 제발 민심과 함께 가기를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