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큰소리치던 연금개혁 결국 용두사미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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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연금지급액을 소득의 60%에서 50%로 낮추고, 보험료(소득의 9%)는 올리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이는 반발이 심한 보험료 인상은 피하고 국민이 잘 느끼지 못하는 연금액만 손대려는 얄팍한 술수다.

국민연금은 적게 내고 많이 받게 설계돼 있어 하루빨리 고치지 않으면 2047년에 고갈돼 소득의 30%를 보험료로 내야한다. 그래서 보험료를 15.9%로 올리고 연금액을 50%로 깎는, '더 내고 덜 받는 개혁'을 하기로 했지만 여야가 3년째 외면해 왔다.

이 개혁안대로 하면 기금 고갈을 2070년 이후로 늦출 수 있다. 이번 합의안으로는 고갈을 5년밖에 늦추지 못해 재정 안정에 거의 도움이 안 된다. 그래 놓고 노인 60%에게 월 7만~10만원을 주기로 했다고 한다. 물론 준비 없이 노후를 맞은 현재의 노인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의 전제조건은 연금 재정 안정화다. 안정화를 위해서 부담은 불가피하다. 부담은 피하고 지원은 늘린다니 앞뒤가 안 맞다.

열린우리당은 2004년에도 이번처럼 보험료를 안 올리는 안을 내놓고 연금개혁의 뒷다리를 잡은 적이 있다. 당시 이를 주도한 사람이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다. 유 장관은 올해 장관 취임 후에는 보험료를 12.9%까지 올리는 절충안을 만들어 연금재정 안정의 당위성을 설득하더니 결국 여당으로부터 저지당하는 자업자득의 신세가 됐다. 거기에다 여당의 기형적인 안에 합의했다고 하니 장관 자리에 왜 갔는지 알 수 없다.

당정의 이번 합의는 미봉책에다 폭탄 돌리기에 지나지 않는다. 당장 보험료를 올리지 않는 게 득표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엄청난 착각이다. 눈앞의 이익에만 집착해 나라 장래를 생각하지 않는데 누가 표를 주겠는가. 욕을 먹더라도 제대로 된 개혁을 하라. 그러면 표도 저절로 따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