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밝혀진 구전의 장보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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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문화재관리국이 6일 전남완도에서 장보고가 세운 법화사지와 중국동전·기와조각·청자편등 관련유적·유물을 발굴(본지 6일자1면참조)한 것은 일부 역사서와 구전으로만 전해오던 장보고의 실체및 활동내용을 유물·유적으로 입증해줬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의 동아시아교섭사, 불교사및 지방사연구에 큰진전을 보게되리라는 기대도 이번 발굴의 큰 성과중 하나로 평가된다.
특히 중국 북송시대의 화폐인 숭령중보(1102∼1106년)의 발굴은 완도지역이 장보고 활동후에도 한·중·일을 잇는 해상교역무대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었을 것이라는 학설을 뒷받침해주는 것으로 분석된다.
숭실대 임병태 교수는 『약10년전부터 이곳에대한 학계의 관심이 모아졌었으나 단편적인 유물만이 간헐적으로 나오다 이번에 절터와 관련 유물이 발굴돼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면서 『앞으로 완도일대에 대한 발굴 조사는 물론 장장군의 또다른 활동근거지였던 중국산동반도일대와 제주도지역에대한 입체적인 조사도 함께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임교수는 또 장보고의 무역대상품목이 자기류였다는 기록과 이번에 출토된 각종 자기류등을 근거로 장보고가 전남강진으로 중국의 자기기술을 도입했다는 학설도 입증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번 발굴은 전남도가 「장도 청해진유적(사적 제308호) 정비사업계획」에 따라 조사를 의뢰해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발굴단장 조유전)가 실시했다.
사지에서는 모두 5개소의 건물터가 노출되었으며 그중 3개소는 건물의 기단·초석·구조물등이 잘 남아있는데다 특히 승방지로 추정되는 터에는 아궁이와 연도, 돌로만든 배수구가 노출되는등 유구가 뚜렷한것도 이번 발굴의 특징중 하나.
또 당초문암막새기와와 연화문수막새기와가 조를 이루어 출토된것도 이 절터가 중요한 사찰이었음을 입증해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지금까지 이 일대에서는 85년6월 방사성동위원소에의한 연대측정결과 장보고의 활동시기( ?∼846년)와 일치하는 시기에 설치된 원목렬과 물자보급로로 이용된 목조교량일부및 갖가지 자기·기와파편이 간헐적으로 발굴됐었다.
한편 일본의 적산법화원연구회측은 최근 장보고가 세운 중국산동반도 동쪽 법화원터에 이절을 일본인이 세웠다는 내용의 사찰유지비석을 세운뒤 본전건축을 위한 모금운동을 벌이는등 활동이 활발한 실정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1월 경제계·해운업계및 학계가 공동으로 장보고대사기념사업회를 결성했으며 현지답사와 함께 장보고가 타고다녔던 고선박의 실물복원및 청해진·법화원유적복원을 계획하고 있다. <김우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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