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13일 미 의회 지도자 면담서 언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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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지난주 위싱턴 방문 중 미국 의회 지도자들에게 "한국의 보수세력은 주한미군을 인계철선으로 이용하고 싶어했다"며 "(진정한) 친구는 자신의 친구를 인계철선으로 사용하지 않는 법"이라고 말했다고 17일 워싱턴 소식통이 밝혔다.

소식통에 따르면 노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하루 전인 13일 데니스 해스터트 하원의장(공화당), 낸시 펠로시 민주당 원내대표 등 미 하원 지도부 인사들을 접견한 자리에서 펠로시 대표에게서 "한국에서 전시작전통제권과 관련해 주요 이슈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이에 노 대통령은 "한국의 보수세력은 주한미군 2사단을 전시(戰時)에 인계철선으로 이용하고 싶어했다(Conservatives in Korea wanted to use the 2nd division as trip-wire in time of war)"며 "그러나 우리(한국 정부)는 미 2사단을 비무장지대(DMZ)의 인계철선으로 남겨두기를 원치 않는다. 왜냐하면 미국은 우리의 친구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고 이 소식통은 전했다.

미 의원들은 노 대통령의 이 같은 언급에 가만히 듣기만 했다고 소식통은 말했다.

한국의 대다수 보수 세력들은 주한미군의 한강 이남 재배치 계획을 놓고 인계철선으로 상징되는 한.미 연합 방위체제가 손상된다는 우려를 표시했었다. 이와 함께 노 대통령은 "만일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톰 랜토스 하원의원의 질문에 "한국은 확고히 대응할 것(react firmly)"이라며 "아마도 대북 제재를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또 이날 미 하원 국제관계위원회가 일본의 종군위안부 동원을 비난한 결의안을 통과시킨 것과 관련, 노 대통령은 "한국의 고통스러운 역사를 이해하고 증언하는 결의안 통과에 감사하다"고 사의를 표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 인계철선(引繼鐵線.tripwire)=원래 뜻은 클레이모어 등 폭발물과 연결돼 적이 건드리면 자동적으로 폭발하게 하는 가느다란 철선을 의미한다. 1953년 휴전 이래 미 2사단을 비롯한 주한미군은 북한군의 주요 예상 남침로인 한강 이북 중서부 전선에 집중 배치됐다. 따라서 북한군이 남침할 경우 반드시 미 2사단 지역을 거쳐야만 하고, 공격받은 미국은 전쟁 당사국으로서 한반도 전쟁에 개입하게 된다. 이 때문에 미 2사단은 한반도 위기 발생 시 미국의 자동 개입을 보장한다는 의미에서 '인계철선'이라고 불려왔다. 미 당국은 2003년 3월 2사단을 한강 이남으로 이동시킨다고 밝히면서 "'인계철선'이라는 용어를 더 이상 쓰지 않기 바란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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