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신인이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몇 가지 자세가 있다. 첫째 남의 작품을 많이 읽되 흉내내어서는 안 된다는 것, 둘째 시조는 이래야 한다는 섣부른 고정관념을 버리라는 것, 셋째 하나의 작품으로서의 완성도보다는 좀 모자란 듯 하더라도 패기에 찬 신선감이 있어야 한다는 것 등 적어도 이세가지만은 염두에 두고 시작에 임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조란 으레 이럴 것이라고 하는 투를 버리지 않는 한 오늘 이 땅에서 씌어지는 시조가 문학의 한 장르로 존속해야 할 의미는 상실되고 만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으로 매번 선에 임하는 선 자에게 다가온 것이 이번 달에는 최재섭씨의『가을어귀』였다.「팽팽한 고요」의 이질적인 화합의 묘와,「하늘로 난 길이 보이리」라고 단정한 화자의 시적 안목이 단연 돋보였다.
차상을 한 이인수씨의『회춘기』와 차하 정병옥씨의『마이산에서』는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수준이 비슷했다. 그리고 많이 써 본 솜씨임에는 틀림없으나 앞에서 선 자가 지적한 점을 다시 한번 되새기라고 당부하고 싶다. 입선에 오른 박달목씨의『백목련』은 단수이면서도 메시지 전달이 분명한 작품이었고 권난희씨의 『고물장수』는「요란한 그 가위 소리에 삶은 잘리어 나갔다」고 하는 재치를 잘 살리지 못한 것이 흠이었다.
봄을 노래한 이상진씨의『봄의 창』은 무난하지만 개성을 찾기 어려웠고, 이종현씨의『봄날에』는 이미 시사성을 상실한 낱말, 즉 사어인 「보릿고개」가 눈에 거슬렸다. 마지막까지 선택에 저울질하게 한 조호영씨의『투우』는 너무 상식적인 얘기를 담으려고 애쓰다보니 작품의 질을 떨어뜨린 우를 범하고만 좋은 케이스였다.<심사위원 윤금초·박시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