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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화가 임옥상의 큰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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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달포 전 우연한 기회에 임옥상 화백을 만났다. 한국전쟁이 발발했던 1950년에 태어난 그는 익히 알려진 대로 80, 90년대 한국 민중미술의 산증인이다. 저항과 고발로서의 미술은 그의 등록상표처럼 따라다녔다.

그날 임 화백은 어린애처럼 싱글벙글 즐거워했다.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면 어린이가 아닐까요. 기성세대의 굳은 머리로는 앞날을 약속할 수 없어요. 그간 많은 문화운동을 해왔지만 결국 문제는 창의적 두뇌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세상에 단 하나뿐인 놀이터를 만들려고 해요. 아이들이 마음껏 상상의 날개를 펴는 놀이터를 준비하고 있어요."

마음에 선뜻 와 닿지 않았다. 흙과 땅을 노래하고, 분단과 독재를 아파하던 그가 갑작스레 놀이터를 만들겠다니…. 90년대 후반 들어 직접적 현실 비판과 다소 거리를 두어온 그이지만 놀이터는 아무래도 생뚱맞았다.

그의 '변신'에 대한 궁금증은 지난주 깨끗하게 해결됐다. 서울시에서 뚝섬 서울숲에 국내 첫 장애인 놀이터를 다음달 중순 개장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설계를 설치미술가 임옥상씨가 맡았다. 장애아들이 휠체어를 탄 채 안전하게 놀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보도 직후 임 화백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의 대답은 또 한번 기자의 상식을 뒤집었다. "장애아 놀이터가 아니에요. 무장애 놀이터입니다.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가 없는 놀이터, 장애아와 비장애아가 함께 뛰노는 장소죠."

임 화백의 설명은 계속됐다. "내가 꿈꾸는 놀이터는 모든 어린이가 함께 어울려 평등과 평화를 배우는 곳이다. 장애인이란 말 자체가 소멸하는 곳이다. 우리나라 놀이터는 천편일률적이다. 미끄럼틀.그네를 빼고 무엇이 있는가. '붕어빵 문화'가 놀이터에도 반복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아이들의 상상력을 키워줄 수 있겠는가."

무엇보다 '무장애'라는 용어가 낯설었다. 공연히 멋진 말을 만들어 낸 건 아닌지…. 하지만 자료를 찾아보니 '무장애 놀이터'는 일반적인 개념이었다. 최근 문화관광부가 펴낸 '공공미술이 도시를 바꾼다'에는 무장애 놀이터가 공공미술의 중요한 장르로 소개됐다. 2004년 장애인편의시민연대는 장애.비장애아 구분 없이 함께 뛰노는 무장애 놀이터 운동을 전개했다. 2005년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인간을 위한 도시 디자인'에도 공공미술가들이 '시제품'으로 만든 무장애 놀이터가 선보였다.

또 미국의 각 주에선 장애아를 위한 통나무집 프로젝트를 실시하고 있다. 비장애아는 나무를 타고 집에 오르고, 장애아는 집에 연결된 다리를 통해 실내에 들어갈 수 있도록 배려한다. 사회적 통합을 위한 공공디자인이다.

그 무장애 놀이터가 국내 처음으로 실물로 다가온 것이다. 임 화백은 앞으로 국회의사당, 경기도 구리시 등에도 무장애 놀이터를 세울 계획이다.

이제 이해가 됐다. 임 화백의 변신은 변신이 아니었다. "달라진 시대, 민중예술의 한계를 절감했다"는 그의 고백은 사실 또 다른 민중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80년대식 저항하는 민중이 아닌 2000년대식 생활하는 민중을 말이다. 그리고 키워드로 우리 사회의 꿈나무가 떠오른 것이다.

임 화백은 2000년 가을 '벽 없는 미술관'이란 책을 냈다. 이후 6년 만에 찾아오는 무장애 놀이터가 벽 없는 미술관의 대표작이 될 수 있을지. '이념의 미술'이 아닌 '일상의 미술'이 익어가는 올 가을이 더욱 푸르게 느껴진다. 눈이 부시게 푸른 날에는 무장애 놀이터를 한번 들러보자.

박정호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