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경제] 같은 휘발유·경유인데 주유소마다 값 왜 다르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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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주유소 기름값은 천차만별이에요. 심지어 공장도가격보다 싸게 파는 주유소도 있답니다. "설마…"라고요. 오일프라이스워치(ww.oilpricewatch.com)라는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보세요. 여기엔 전국 주유소 기름값이 실시간으로 올라옵니다. 12일 현재 전국에서 경유(디젤)를 제일 싸게 파는 곳은 전남 보성군의 'SK 세경주유소'라고 나와 있네요. ℓ당 1145원. SK가 지난 7일 발표한 경유 공장도가격(세금포함)이 1ℓ에 1266원이니까 공장도가격보다 ℓ당 121원 싸게 파는 셈이죠. 일일이 세 보니 1266원 아래 가격으로 파는 주유소가 2475곳이나 되네요. 정유사들 공장도가격이 비슷하다고 치면, 전국 주유소가 1만1000개쯤 있으니까 대략 다섯 곳 중 한 곳이 경유를 공장도가격 밑으로 파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주유소가 밑지고 파는 것은 아닐 텐데.

전에 쌀 때 사뒀던 것을 계속 팔고 있는 거라고요. 하지만 경유 공장도가격은 한 달 전 ℓ당 1280~1290원에서 계속 내리고 있어요. 요즘 들어 원유값이 떨어지면서 덩달아 값이 내려가고 있는 거죠. 그러니 '쌀 때 사뒀던 것'이라는 설명은 맞지 않아요.

비밀의 열쇠는 '유통 구조'가 갖고 있답니다. 유통 구조란 정유사가 어떤 경로를 거쳐 주유소에 기름을 공급하는가, 대금 결제는 어떻게 하는가를 가리키는 거예요.

주유소가 기름을 받아오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어요. '정유사→주유소' 직거래와, '정유사→대리점→주유소'처럼 중간에 대리점을 거치는 방식이랍니다. 정유사는 주유소에 직접 기름을 팔기도 하지만, 전국 1만1000개 주유소를 일일이 상대하기 힘들어 '대리점'이라는 도매상에 판매를 맡기기도 합니다. 전국엔 이런 대리점이 약 300여 곳 있다고 해요. 큰 대리점은 주유소 30군데 정도, 작은 곳은 4~5 군데에 기름을 공급합니다.

얼핏 생각하기엔 대리점을 거쳐 받는 주유소가 불리할 것 같을 거예요. 중간에 있는 대리점도 이익을 챙길 테니까, 주유소가 그만큼 기름을 비싸게 공급받을 거라는 얘기죠. 하지만 현실은 반대예요. 대리점을 이용하는 주유소가 더 싸게 기름을 받는 경우가 오히려 많아요. 제일 큰 이유는 정유사들이 주유소보다 대리점에 석유를 싸게 주기 때문입니다. 만일 정유사가 주유소를 상대로 대리점에 주는 만큼 기름을 팔려면 훨씬 더 많이 돌아다녀야 하고, 또 사람도 많이 필요하겠죠. 대리점은 한꺼번에 많은 기름을 사는 만큼 이런 비용이 덜 들어 싸게 살 수 있는 거죠. 또 대리점들이 이익을 많이 남기지 않는다고 해요. 결국 싸게 기름을 받아다가 적은 이익을 얹어 주유소에 넘기는 대리점을 통해 기름을 받는 주유소들이 휘발유.경유를 오히려 싸게 팔 수 있는 거예요.

사실 대리점별로도 정유사에서 기름을 받는 값이 달라요. 아까 큰 대리점은 주유소 30여 곳, 작은 대리점은 4~5곳과 거래한다고 했죠. 정유사에선 많이 사는, 그러니까 규모가 큰 대리점일수록 싸게 기름을 줍니다. 또 대리점들이 기름을 살 때 어음이 아니라 현금 결제를 하면 값을 더 깎아주기도 해요. 어음이란 "적힌 날짜 일정 기간 뒤 돈을 주겠다"는 약속증서예요. 기름을 사면서 어음으로 결제해 한 달이나 두 달 뒤 현금을 주는 것과, 바로 현금을 주는 것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죠.

정유사가 주유소에 직접 기름을 주면서 값을 많이 깎아주는 경우도 있어요. 경쟁 주유소가 부근에 몰려 있을 때 그래요. 비싸게 공급했다가 주유소가 경쟁업체에 밀려 문을 닫으면 손해를 보니까 다른 주유소와 경쟁할 수 있도록 할인 혜택을 주는 거죠.

미래에 대비해 정유사들이 휘발유나 경유를 싼 값에 많이 내놓을 때도 있어요. 정유사들은 앞으로 원유값이나 휘발유.경유값이 어떻게 변할지 연구를 많이 해요. 그러다 곧 석유제품 값이 많이 떨어지겠다 싶으면, 앞당겨 팔아치우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공장도가격보다 싸게 대량으로 내놓곤 해요. 특히 나들이가 줄어 기름 소비가 감소하는 겨울을 앞두고 이런 일이 많이 생긴다고 해요. 이처럼 주유소 기름값에도 ▶유통 구조 ▶경쟁 원리 ▶미래시장에 대한 예측 등 복잡한 요인들이 얽혀 있답니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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