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빠른 친일 후손', 재산 빼돌리고 외국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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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친일파 재산환수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발 빠른 친일파 후손들이 이미 상당수 재산을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지난달 18일 출범한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의 친일파 재산 국고 환수작업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경향신문은 11일 이같이 보도하고 "일부는 일본 귀화 등을 통해 벌써 한국을 떠났다"고 전했다.

한일합방 당시 조약 체결에 찬성한 매국노 7인 중 한 명인 조중응은 일제에게 경기 남양주시 등지의 70여만㎡의 땅을 받았다. 이 땅은 손녀 조모씨에게 모두 상속됐다. 조중응은 조사위의 직권조사 대상 400명에 포함돼 있으나, 손녀 조씨는 상속받은 재산 1963년부터 2000년까지 제3자에게 매각했다.

국내에 남아있는 재산은 서울 종로구 운니동 대지 1,784㎡, 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의 '일본문화원' 대지와 건물뿐이지만, 이는 상속 재산이 아니어서 환수 여부가 불투명하다. 손녀 조씨를 제외한 조중응의 후손들은 1969 ̄1981년 사이에 모두 일본에 귀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제 때 중추원 참의 등을 지낸 친일파 정교원의 후손 역시 대부분의 재산을 매각한 상태다. 정교원은 경북 성주군 등 전국 각지에 총 8만5천여평의 토지 및 임야를 소유했으나 이 땅을 모두 팔고 지난 5월 미국으로 이민갔다. 정교원의 후손은 95년 경기 평택시 토지 매각때 발생한 양도소득세 2천1백만원도 내지 않은 상태다.

'겨울연가'로 유명해진 강원 춘천시의 남이섬은 대표적 친일파인 민영휘의 증손자 민모씨 소유다. 민영휘는 당시 중추원 의장을 지냈고, 일본으로부터 자작 작위를 받았으며, 서울 휘문고를 설립하기도 했다.

1966년 경춘관광개발로 시작한 남이섬은 민영휘 손자가 1994년 '주식회사 남이섬'으로 명의를 변경, 대표이사를 지냈으며 현재는 증손자가 회장으로 재직 중이다. 민영휘의 재산은 이미 조사위의 조사개시 결정이 내려진 상태지만 주식회사 형태인 남이섬은 다른 주주들 때문에 국고 귀속이 가능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밖에 400명의 직권조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친일파들의 재산 환수는 더욱 어려워 보인다. 재산조사위는 '매국노, 작위 수여자, 중의원, 중추원 참의' 4개의 범주로 우선 조사대상을 설정했다. 여기에 포함 안 된 친일파 후손은 법망을 피해 조사가 시작되기 전 미리 재산을 매각할 우려가 높다. 재산 조사대상에 누락돼 있는 경우 친일파 후손들은 언제든지 재산을 팔아넘길 수 있다.

(디지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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