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에 계란 던진 연극인들/오병상 문화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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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연극인들은 요즘 답답하기 짝이 없다. 우리나라 최초의 연극전용관이었던 동양극장을 잃고도 별 뾰족한 수가 없다.
서울시는 지난 1월18일 연극전용관이던 세종문화회관 별관을 시의회 의사당으로 사용하는 대신 현대그룹이 소유하고 있던 동양극장을 매입,연극전용관으로 사용토록 해주겠다고 약속해 연극인들의 반발을 무마했었다.
그러나 현대측은 서울시의 매입의사가 소극적이라고 판단,『건물이 너무 낡았다』는 이유를 들어 지난달 24일 이를 철거해버렸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연극인들은 물론 발끈했다. 그러나 묘안은 없었다.
서울시는 『건물철거는 당국에 사전신고 사항이 아니라 우리도 알지 못했다. 더욱이 소유주가 건물을 철거하는 것을 막을 법적 근거도 없다』며 현대측에 책임을 미뤘다.
현대측은 『우리는 오래전부터 동양극장을 철거할 계획이었다. 서울시의 매입의사가 적극적이지 않았기에 계획대로 집행한 것』이라며 되받아 넘겼다.
연극인들은 서울시와 현대의 핑퐁식 책임회피에도 불구,어느쪽에도 큰 소리치지 못했다. 『열악한 환경에 있는 연극을 지원해야 한다』는 연극인들의 주장은 누구나 인정하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아무런 수단이 없다.
그나마 연극인의 명분을 세워줘야 할 서울시는 『새로운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사기업체인 현대측은 아예 연극인들을 만나주지도 않았다.
궁여지책으로 연극인들은 지난 10일 오후 1시 대학로 동숭동 소극장에서 「동양극장 파괴에 항의하는 비상 연극인대회」를 열고 가두시위를 벌였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무기인 「명분」으로 여론에 호소하고 나선 것이다.
대학로를 채 벗어나지도 못하고 경찰의 저지를 받자 그들은 자진해산했으며 현대그룹본사앞에 다시 모였다.
「근로자의 날」이라 건물은 텅 비었지만 경찰이 3중으로 차단하는 바람에 연극인들은 건물앞 인도에 모였다. 그리고 날계란을 꺼내 「현대」라고 쓴 이름돌을 향해 던졌다. 그리고 경찰에 연행돼 갔다.
결국 그들의 최후 항의방법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그러나 현대그룹본사 앞마당의 이름돌은 아무런 손상도 없이 깨끗하게 닦여졌고 서울시의 대책마련은 오리무중이다.
문화창달을 외치고 문화사업지원을 강조해온 서울시나 현대그룹이 진짜 문화를 아끼고 사랑하고 있음을 증명해 보일 좋은 기회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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