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토크] 김재박, 차범근, 노무현의 공통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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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주변에서 '가장 좋아하는 야구선수는 누구냐?'는 질문을 하면 기자는 '김재박'이라고 답을 했다. 서울에서 열렸던 1982년 세계 야구 선수권 최종전인 일본과의 경기에서 개구리 점프를 하며 번트에 성공했을 때보다 훨씬 이전부터 김재박을 야구팬으로서 좋아했다. 한국화장품 시절부터 김재박은 나의 영웅이었다. 나는 그를 보기 위해 야구장을 자주 찾았다.

차범근(53.수원 삼성)도 나의 축구 영웅이었다. 선수 시절 그가 독일로 떠나기 전에 '고별전'이 열린 바 있는데 나는 서울운동장(현 동대문 운동장)을 찾아갔을 정도로 그를 좋아했다. 요즘도 그와 관련된 기사를 읽으면 옛날 생각이 나서 좋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이 '국가대표팀' 선장 자리에 있을 때 나는 이들의 '안티'가 되고 싶어진다. 너무나 실망스럽기 때문이다. 차범근은 선수로서 해설가로서는 최고다. 설명이 필요 없는 인물이다. 그런데 국가대표 감독 자리에서는 정말로 실망스러웠다. 그는 균형이 덜 잡혀 있는 듯한 느낌이 들게 했다. 또한 전략 전술이 넓고 깊지 않았다.

김재박(52.현대) 감독 역시 국가대표 감독감은 아니다. 그 역시 국가대표 감독이 되기에는 균형 잡힌 사고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프로야구 감독과 국가대표 감독은 다르다. 국가대표 감독은 넓고 깊게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

최근 그가 했던 말을 보자. 그는 추신수(24.클리블랜드)를 도하 아시안게임 대표팀 명단에서 제외하면서 "추신수는 메이저리거가 아니다"라는 이상한 말을 했다. 지금 메이저리그팀에서 뛰고 있는 선수를 빅리거가 아니라고 하면 그건 억지다. 추신수의 클리블랜드에서의 성적은 3할1푼3리 홈런 2개 17타점 볼넷 12개로 수준급이다. 사실을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억지를 부린다면 그것은 고집이 아니라 아집이다.

김재박 감독 혼자 국가대표를 뽑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추신수를 뽑을 생각은 없다"고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추신수 탈락에 감독의 뜻이 반영된 것이다. 추신수를 제외한다는 것은 한국 축구 대표팀에서 설기현을 빼는 것과 비슷하다. 설기현(레딩)은 최근 프리미어리거가 돼 주가를 올리고 있는 선수다. 베어백 감독이 "설기현은 프리미어리거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면 그는 당장 해고됐을 것이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한국 야구는 미국 진출 선수를 기용하지 않고 예선 탈락의 쓴잔을 마신 바 있다. 당시 감독은 김재박이었다.

한국은 지난 3월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메이저리거 없이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을 것이다. 메이저리거 중 가장 빠진다고 할 수 있는 최희섭도 미국전에서 3점 홈런으로 기여를 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도 대통령 하기 전까지만 좋았다. 리더는 자기 위치를 제대로 알고 높이 올라가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행복하다. 김재박 차범근 노무현 이들은 이전에는 기쁨을 준 인물이었지만 국가대표 선장이 되어서는 아픔과 분노를 안겨준 사람들이다.

박병기 기자

<미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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