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봉투」 추방은 교사 주도로(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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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조사대상 학부모의 77.4%가 교사에게 돈봉투를 건넨 경험이 있으며 44%가 「빈손으로 갈 수 없어 학교를 찾아가지 못한다」는 설문조사 결과는 전체 교단에 자괴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할 것이다. 물론 학부모와 교사가 돈봉투를 주고받는 것이 전국적으로 보편화된 현상이라 볼 수는 없다. 우리는 교단의 신성함을 지키며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묵묵히 사도를 걷고 있는 많은 교사들이 있음을 잘 알고 있으며 전체적으로는 그런 교사의 숫자가 압도적일 것임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2일 「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가 밝힌 설문조사 결과도 부인하지 못할 현실의 일단을 나타내 주는 것이다. 비록 일부 교사에 국한된 것이고,주로 대도시 학교에서 빚어지고 있는 현상이라 하겠으나 그런 현상이 존재한다는 것만은 비단 이번 설문조사 결과가 아니더라도 많은 학부모들이 경험으로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학부모가 자녀의 스승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는 것 자체가 나쁠 것은 없다. 적당한 기회에,적절한 방법으로 순수한 마음에서의 감사표시라면 오히려 장려되어야 할 것이지 문제될 것은 조금도 없다. 그런 감사의 표시는 자녀들에 대한 교육적 효과마저 있다.
그러나 그 감사의 표시가 간편함을 이유로 돈봉투를 건네는 일이되고,그것을 통해 서로가 서로의 이기심을 만족시키려 든다면 이는 분명 반교육적 현상이며 배격되어야 마땅한 일이다.
교사들로 보아서는 이번 조사결과가 우선 불유쾌할 것이고 결과적으로 전체 교사상에 먹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반발심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실제와 얼마나 부합되든간에 44%의 학부모가 빈손이어서 학교를 찾아가지 못하고 있고 56.3%가 돈봉투를 건네고 난 뒤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는 것 같다고 느끼고 있는 사회 분위기 자체에 대해서는 전체 교단차원에서도 깊이 생각하는 바가 있어야 할 줄 안다.
「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는 돈봉투 없애기 운동을 전국적으로 펼쳐 나가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우리가 보기엔 이러한 운동은 오히려 교사쪽에서 주도되어야 할 성질의 것이다. 「내 아이에 대해 관심가져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란 학부모의 이기심도 편승할 만한 것이나 돈봉투 없애기 운동이 학부모쪽에 의해 전국적으로 펼쳐질 때 가장 큰 상처를 입는 쪽은 결국 교단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학부모측의 「돈봉투 없애기 운동」도 사려깊게 펼쳐져야 한다고 본다. 이기심의 충족을 위해 돈봉투로 교사를 타락시키는 일부 학부모들의 자성도 필요한 일이나 자칫하면 그것은 가뜩이나 입지와 권위가 약화되어 있는 교단을 더욱더 위축시키고 많은 양심적인 교사들의 명예에 손상을 줄 우려가 크다. 그것에서 오는 피해는 결국 우리 모두가 함께 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 해묵은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역시 사회가 교사의 경제적ㆍ사회적 지위를 향상시켜 주는데 있다고 믿는다. 이번 돈봉투 없애기 운동도 궁극적으로는 그러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쪽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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