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찰실<64>|박한철 <한양대의대교수·내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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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몸이 붓는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는 것으로 적지 않은 걱정거리가 된다. 우선 진찰실을 찾아온 환자들이 흔히 호소하는 증세를 살펴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아침에 일어나면 얼굴이 붓고 머리가 좀 아프고 가슴도 뛴다(주부·46). ②매일 술을 마신 탓인지 다리와 배가 많이 붓고 요즘엔 밥맛도 없어졌다(농부·42). ③가만히 있어도 몸이 붓고 걸어다니면 다리가 더 퉁퉁 부으며 소변에 거품이 많이 일어난다(학생·13). ④당뇨병을 10년 앓았는데 배와 다리가 붓고 안과병원에도 다닌다(뚱뚱한 부인·62). ⑤얼굴이 퉁퉁 부어 눈을 뜰 수 없을 지경이고 머리도 아프고 생리통도 있어 이뇨제를 매일 20알씩 먹는다(다방여종업원·23). ⑥몸이 붓고 가슴이 두근거리며 걸으면 숨도 차다(학생·16). ⑦소화가 안되고 얼굴이 조금 부은 듯하며 목소리도 굵어진 것 같다(가정주부·52). 이 같은 증세는 다른 자료가 없더라도 웬만한 예비의사면 쉽게 병명을 짐작할 수 있다.
즉①은 폐경기의 특발성 부종이고 ②는 간경화, ③신증후군, ④당뇨병성 신병증, ⑤특발성·주기성 부종 (진통제 복용으로 생길 수 있음), ⑥은 심부전, ⑦은 갑상선기능저하로 일단 진단할 수 있다.
참고로 특발성이라는 것은 그 원인을 정확히 짚어낼 수 없는 경우를 뜻한다.
몸이 붓는다는 것은 염분을 포함한 수분이 모세혈관 밖의 간질에 많이 축적 돼 있다는 뜻이다. 혈관 안으로 수분을 빨아들이려는 단백질의 압력(교질 삼투압)과 혈관 밖으로 수분을 밀어내려는 압력(정수압)의 차이가 적당히 평형을 이루지 못하고 후자가 많으면 부종이 생긴다.
하지정맥이 나쁠 때 다리가, 간경화로 문맥 (위·창자·췌장·지라의 모세관을 돌고 온 정맥의 피를 모아 간에 보내는 굵은 정맥)의 순환이 나쁠 때 배가 각각 붓게 되는데 이는 순환장애가정수압을 높이기 때문이다.
섭취한 만큼의 염분이 배설되지 못하면 혈액량이 증가하고 역시 정맥압을 증가시킨다. 한편 간경화로 단백질의 일종인 알부민의 생산이 제대로 되지 않거나 신증후군으로 단백질의 손실이 늘어나거나 또는 심한 영양실조가 있을 때 엔 모두 핏속의 단백질농도를 저하시키고, 따라서 삼투압도 저하된다.
다행히 몸이 붓는 많은 사람들, 특히 여성들 중에는 위와 같은 심각한 질환이 없이도 붓는다. 즉 음식을 짜게 먹었을 때, 과로한 후, 월경 전에 일과성으로 몸이 부을 수 있다.
이런 부종은 정도가 심하지 않으며 아무런 치료를 받지 않더라도 시간이 다소 흐르면 자연히 없어진다.
따라서 이런 여성들은 붓는 것에 민감할 필요가 없다.
또 부으면 나중에 살이 된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몸이 붓는다는 이유만으로 무턱대고 이뇨제를 사용하면 부작용을 증가시킬 따름이므로 조심해야 한다.
◇필자약력 ▲서울출생(1934년) ▲서울대의대졸업(59년·의박) ▲육군군의관(59∼65년) ▲국립의료원 내과(65∼67년) ▲미 아이오와대의대 내과 레지던트(67∼70년) ▲미 코넬 대·뉴욕대의대 신장학연구원(70∼75년) ▲한양대의대 교수(75년∼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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