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화사태에 모두의 힘을… (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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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방화사건이 계속되고 있다. 서울에서 시작된 사건이 경기ㆍ충남ㆍ경남 등 지방으로까지 확산되었고 발생시간대도 초저녁부터 새벽까지로 넓혀졌으며 장소도 인구밀집지역이나 인적 드문 곳을 가릴 수 없게 되었다.
이는 최초의 방화가 어떤 동기에서,누구에 의해 저질러 졌든 간에 개별사건의 차원을 넘어 이미 모방범죄,충동범죄의 단계로 들어섰음을 시사해준다.
사건이 이 단계에 이르면 개개의 사건 수사에 못지않게 모방과 충동을 유발할 심리적 연결고리를 끊는 일이 중요해진다. 시민의 경각심과 범행을 쫓는 철저한 수사가 필요함은 물론이나 시민들의 지나친 불안심리나 수사당국의 과잉반응과 그로 인한 시민 일상생활의 불필요한 침해는 도리어 모방과 충동심리를 부채질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현재 번지고 있는 방화사건은 사회심리적 효과를 노린 것이어서 재산상의 피해는 크지 않다. 이러한 성격의 방화는 범행이 쉽고 그 증거도 잘 남지 않게 마련이다. 방화사건이 쉽게 그 꼬리가 잡히지 않고 있는 근본이유도 여기에 있으며 그것은 방화범이나 잠재적 범인들에게 새로운 범행을 저지를 심리적 유혹과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
애초의 방화사건에 대한 수사도 중요하지만 현 단계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모방과 충동을 유발하는 그 심리적 연결고리를 끊어 방화의 확산을 막는 일이다.
당연한 주문이지만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단 두 세건이라도 범인을 잡아 또 다른 범행을 노리고 있는 자들에게 두려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의도적이고 조직적인 범행의 경우에는 큰 효과를 거둘 수 없겠으나 모방범죄나 충동적 범죄에는 이것이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임을 다른 나라에서의 사례들이 입증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경찰의 분발을 촉구한다. 가뜩이나 경찰의 치안력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높은판에 검거실적은 없이 허둥거리는 모습만 보여서는 그 신뢰에 더욱더 금이 갈 뿐이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인력을 풀어 아무나 검문하고 연행하는 식이어서는 시민의 협조는커녕 오히려 반발을 사는 뜻하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지금은 시민들의 경찰에 대한 이해와 협조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인 만큼 시민의 인권침해나 생활불편이 없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모방과 충동의 심리적 연결 고리를 끊는데 그 다음으로 중요한 일은 시민의 자발적 협조다. 이미 자구적인 차원에서 여러 움직임이 일고 있기도 하지만 심리적 효과를 노리는 방화는 그 누구도 범행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모두가 차분한 마음가짐 속에서도 경각심은 유지해 나가야 한다.
방화의 대다수는 개인적인 요인에 의한 것이라는 게 학자들의 연구결과다. 모방과 충동에 의한 방화의 경우는 특히 그렇다. 방화의 확산이 가져올 사회적 불안과 혼란을 막기 위해 각자가 자신들의 주위도 다시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방화가 단시일안에 이처럼 광범위하게 확산되는데서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은 불만요인이 잠재해 있는가 하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당장은 방화사건의 「진화」가 시급한 과제이지만 이점에 대한 깊은 성찰도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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