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의 중립은 말뿐인가/한심한 정부의 합당홍보 발상(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거대신당 출현이후 정부의 정책방향이 보수 회귀냐,개혁 수검이냐에 국민의 관심이 쏠려있는 시점에서 일부 공무원과 일선 교사들에게 합당 홍보를 지시했다는 구시대적 작태의 재현은 우리에게 깊은 우려와 실망을 안겨준다.
물론 합당의 당위성을 홍보하려는 계획이 한 부처의 전시대적 관료체질에 젖어있는 몇몇 개인의 과잉 충성심에서 비롯된 발상이었다고 짐작할 수도 있다.
그러나 총무처의 발의에 따라 문교부가 15개 시ㆍ도교위에 민자당 창당의 역사적 당위성을 홍보하라고 지시하고 그 결과까지 보고하라는 치밀한 계획을 내린 것으로 미뤄봐서 합당 홍보지시가 정부내 일부 「충성파」의 우발적 발상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조치가 명백히 위반하고 있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관계법은 일단 접어두고라도 전교조 파동으로 깊은 상흔을 안고있는 교육현장의 일선교사들에게 강한 반발과 불협화음을 일으킬 것이 뻔한 이같은 지시를 내린다는 것은 어떤 상식으로도 용납이 되질 않는다.
더구나 통합이후의 정국향방과 지자제 실시를 앞두고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이 그 어느때보다 긴요한 이때에 권위와 압제의 구습에 젖어 공직자를 여당 홍보의 시녀로 삼는 악습이 조금도 개선되지 않았음을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지자제 실시와 병행할 교육자치제는 교육의 자율성과 중립성을 그 기본정신으로 삼아야할 터인데도 그 실시가 임박해진 지금까지 교육의 자율성과 중립성을 공공연히 침해하는 행위를 정부가 일삼는다면 앞으로의 교육자치 또한 허울좋은 껍질로 그칠 것이 눈에 선하다.
따라서 정부는 일부 공무원과 일선 교직자들에게 내린 합당 홍보지시가 어떤 연유,어떤 의도,어떤 경로를 거쳐 하달되었는지에 대해 분명하고도 구체적인 해명이 있어야 할 것이며 그 책임의 소재에 대한 명쾌한 후속조치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만약 이 사건을 흐지부지 덮어두고 넘어가려 한다면 앞으로의 정국과 정책향방 또한 구시대와 다를 바 없는 권위주의,그리고 지시 일변도의 속성을 떨쳐버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자인하는 결과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3당통합이 정국의 안정과 사회ㆍ경제의 정상회복을 위한 「구국적 결단」이었다면 그에 상응하는 개혁의지가 구습에 젖은 관료행정의 쇄신에서부터 가시화되어야만 한다.
입으로는 개혁과 민주화를 3년째 외쳐댔으면서도 행정체계는 구습과 악습의 관행에 젖어 그대로라면 누가 합당의 역사성과 당위성을 인정하려 들겠는가.
국민의 정치수준이 그 어느때보다 높고,더구나 공직에 몸담고 있는 공무원이나 교사라면 나름대로의 현실적 판단과 정치적 시각을 두루 갖추고 있을 것이다. 여기에 대고 홍보랍시고 지시하고 강요한다는 것은 오히려 반작용을 몰고올 뿐이다.
상식적으로도 납득할 수 없고 논리적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구시대의 표본적 사태가 정부내에서 발생되었음을 정부 스스로 중시하고 이에대한 분명한 해명과 합당한 조처가 뒤따르기를 엄중히 촉구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