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감독' 베어벡 절반의 성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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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2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한국과 이란의 아시안컵 예선 경기에서 이호가 환상적인 오버헤드 슛을 날리고 있다. 슛은 왼쪽 골 포스트를 아슬아슬하게 벗어났다. 이정빈 대학생 사진기자(후원:canon)

한국 축구대표팀 핌 베어벡 감독에게는 달갑지 않은 세간의 평가가 따라다닌다.

'코치로서는 뛰어날지 몰라도 감독 역량은 떨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베어벡은 거스 히딩크와 딕 아드보카트 감독 밑에서 한국 대표팀의 수석코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하지만 일본 프로축구 J리그 교토 퍼플상가, 네덜란드령 안틸레스 대표팀 감독을 맡아서는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2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아시안컵 예선 3차전 이란과의 경기는 베어벡에겐 사실상 한국 감독 데뷔전이었다. 제대로 된 라이벌 이란을 맞아 해외파 6명을 동원한 이날 경기에서 베어벡은 사령탑으로서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드러냈다.

선발 명단에서부터 베어벡의 색깔이 드러났다. '터줏대감' 이운재(수원)를 제쳐놓고 김영광(전남)을 골키퍼로 기용했다. 윙백 기용이 점쳐지던 김동진(제니트)을 중앙 수비로 돌렸다. 이름값과 고정된 포지션에 연연하지 않고, 컨디션이 가장 좋은 선수를 기용하겠다는 '실리주의' 포석이었다.

대표팀은 전반과 후반 중반까지 만점에 가까운 압박 축구를 구사했다. 더블 볼란치(수비형 미드필더) 김남일(수원)-이호(제니트)는 물론 양 윙포워드와 최전방 조재진(시미즈)까지 적극적으로 수비에 가담했다. 이란은 한국의 강력하고 효과적인 압박에 시달리며 이렇다 할 찬스를 만들지 못했다.

하지만 설기현(레딩)의 선취골로 1-0으로 앞선 뒤 후반 초반 잇따른 찬스에서 추가 득점에 실패하면서 베어벡호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체력과 집중력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플레이가 느슨해졌다. 하지만 베어벡은 공격 패턴에 전혀 변화를 주지 않았다. 적절한 선수 교체로 경기 흐름을 바꾸는 데도 실패했다. 물오른 이천수(울산)를 기용해 빠른 측면돌파를 시도했다면 추가 득점할 가능성도 있었다.

후반 중반 이후 선수들이 느슨한 플레이로 잇따라 공을 빼앗기자 베어벡은 초조함을 드러냈다. 주장 김남일에게 신경질적인 질책을 했지만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도록 선수들을 독려하는 데는 실패했다. 한국은 결국 마지막 30초를 버티지 못하고 어이없이 동점골을 허용했다. 베어벡은 "모든 분이 실망했을 것이고, 우리도 실망했다. 경기를 주도했지만 골문 앞에서 예리함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초보 감독' 베어벡은 경기 흐름 파악과 기민한 대처, 경기장 내에서 선수 장악에 문제점을 드러냈다.

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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