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간에 절충의 관행을(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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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임금산출 근거 놓고 대화부터 하라
올해도 예외없이 근로자측과 사용자측이 제시한 임금인상률은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7일 경단협이 확정,발표한 올해 임금가이드라인 「7%이내」는 이에 앞서 제시된 노총의 임금인상요구율 17.3∼20.5%,전노협의 23.3%에 비할 때 무려 10.3∼16.3%포인트의 격차가 있는 것이다.
이는 올해야말로 산업현장의 평화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되는 시기임에도 앞으로의 임금교섭 역시 결코 순탄하지 만은 않을 것임을 예고해 주는 것이다.
임금인상률의 이러한 현격한 차이는 임금에 대한 노와 사의 관점이 근본적으로 다른 데서 비롯된다.
양측이 제시한 인상률의 근거를 보면 근로자측은 임금을 주로 생계비에 기준을 두고 산정하고 있는 반면 사용자측은 그것을 주로 기업의 경영여건에 입각해서 책정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임금에 대한 서로 다른 시각아래 노사가 공감할 수 있는 기준없이 인상률을 책정했기 때문에 그 차이가 크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노와 사를 대표하고 있는 측의 임금인상률이 이처럼 현격한 차이를 보인채 아무런 조정작업 없이 그대로 개별 산업현장에 전달될 때 임금교섭과정에서의 마찰과 갈등이 그만큼 크리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따라서 그러한 마찰과 갈등을 최소화하려면 우선 임금에 대한 노사 쌍방의 관점의 차이부터 축소해 나가는 것이 당연한 순서라고 본다.
그러나 지난 3년간을 되돌아 볼 때 어느 쪽도 그에 대한 진지한 노력이 없었다. 그저 자신의 관점에 근거한 가이드라인의 타당성 만을 일방적으로 역설해 왔을 뿐이다. 그 결과 합리적인 임금교섭을 위한 가이드라인은 노사간의 입장차이만을 더욱 도드라지게 함으로써 임금교섭을 오히려 어렵게 하는 결과를 낳아왔다.
올해도 그와 같은 결과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개별 기업이 임금교섭에 들어가기에 앞서 경단협과 노총,그리고 더욱 바람직스럽기는 노총에 가입하지 않은 근로자들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적절한 대표까지 포함한 모든 당사자대표가 한자리에 앉아 먼저 가이드라인부터 서로 최대한 접근시키는 조정작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본다. 노와 사의 임금가이드라인 격차가 작으면 작을수록 개별기업에서의 임금교섭이 순조로울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다.
만약 이번에도 가이드라인의 사전조정작업 없이 개별기업이 그대로 임금교섭에 임한다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지난 3년간의 노사분규 과정을 통해 경험했듯이 현실적으로는 존재하나 제도적으로는 배제된 일부 노동세력은 강경투쟁노선으로 치달을 것이고 그와 시각을 다소 달리하는 노총은 또 다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채 방관적 자세로 물러나 근로자들로부터의 불신만 더 사게 될 것이다. 그런가하면 정부는 정부대로 산업현장에 어쩔 수 없이 개입하게 돼 조정역을 맡아야 할 정부가 근로자들에게는 기업주의 편의로만 비치게 되는 지난날의 쓰라린 경험을 다시 한번 감수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물론 노사대표간의 가이드라인조정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며 당장 바람직한 합의가 도출되리라고 기대하기는 더더욱 어려운 실정이다. 그러나 임금교섭과정에서의 불필요한 대립과 마찰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가이드라인부터 조정할 필요가 있는 이상 주저없이 대화의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그를 통해 서로의 관점과 입장을 포괄하고 절충하는 데 까지는 이르지 못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상호간 이해의 폭만은 넓힐 수 있을 것이다.
설사 그것마저도 기대하기 어렵다고 하더라도 노사대표가 임금에 관한 합의를 대화를 통해 이룩해 나가는 관행은 대단히 소중한 것이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러한 관행의 축적은 산업평화를 위한 값진 밑거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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