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여름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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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여름날'- 김사인(1956~ )

풀들이 시드렁거드렁 자랍니다

제 오래비 시누 올케에다

시어미 당숙 조카 생질 두루 어우러져

여름 한낮 한가합니다

봉숭아 채송화 분꽃에 양아욱

산나리 고추가 핍니다

언니 아우 함께 핍니다

암탉은 고질고질한 병아리 두엇 데리고

동네 한 바퀴 의젓합니다

나도 삐약거리는 내 새끼 하나하고 그 속에 앉아

어쩌다 비 갠 여름 한나절

시드렁거드렁 그것들 봅니다

긴 듯도 해서 긴 듯도 해서 눈이 십니다



풀 이름 중에 '제'도 있고 '올케에다'도 있고 '두루'도 있으니 우리나라 식물도감 개정판 내야겠다(믿을라!). 우후(雨後)이므로 안팎 허물없이 고요하게 아우성이다. 암탉이 늦된 것들 데리고도 의젓한 것은 수탉이 도회 생활하느라 집을 비워 혹 누가 넘볼까 싶어 허장성세를 한 듯. 두루두루 촌수를 좁혀 대동(大同)하니 노안(老眼)도 눈부시다. 그 여름 해 곧 짧아지니 심안(心眼)이 올 듯.

<장석남.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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