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가있는이야기마을] '큰 물건'의 정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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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주말이 아니라 그런지 한산한 편이었다. 아들은 가져간 물총과 로봇을 가지고 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 그것도 싫증이 났는지 "엄마, 나 저기 들어가 놀게" 하곤 온탕으로 가버렸다. 애 나오기 전 얼른 씻어야겠다 싶어 바쁘게 손을 놀리고 있는데, 어느새 시무룩해진 애가 옆에 와선 얌전히 놀고 있는 것이었다. 평소와는 영 다른 반응이었다.

"왜 온탕 재미없어? 더 놀지 그래?"

그런데도 아이는 기죽은 듯 겁먹은 표정으로 장난감을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이윽고 본격적인 목욕에 돌입했는데도 아이는 얌전했다. '이상하네, 왜 이러지?' 한번 씻기려면 워낙 번잡스럽게 나대던 아이라 아무래도 이상했다. 그래도 잘됐다 싶어 한참 속도를 내고 있는데, 온탕 쪽에서 위생사(때밀이) 아주머니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누구야? 누가 이런 거야? 내 참 어이가 없어서…. 세상 이게 무슨 일이래…!"

돌아보니 아주머니께선 붉으락푸르락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는 안 그래도 더운 목욕탕 안에서 스팀을 팍팍 올리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다들 온탕으로 모였고, 그 속을 들여다본 순간 뎅그렁~, 머릿속에서 종소리가 들렸다.

아, 우리 애…. 혹시 우리 애…?

자리로 살짝 돌아와 "너지? 네가 그랬지? 엉?" 하며 낮은 목소리로 을렀다. 아이는 새파랗게 질려 금방 울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얼른 도망가야겠단 생각밖에 안 들었다. 변명한다거나 사과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얼른 애 샤워 시키고 막 일어서려는데 뒷덜미를 잡아채듯 누군가 "아줌마, 혹시 아줌마 아들이 이런것 아녜요?"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넷…? 아니에요, 무슨 그런…. 아니에요." 하고는 얼른 목욕탕을 나섰다. 등에선 식은땀이 주르룩 흘렀다.

이후 한동안 나는 그 목욕탕에 가지 못했다. 다들 짐작하셨겠지만, 우리 애가 그 안에다 그만 '큰일'을 봐 놓은 거였다. 물은 뜨뜻하지, 가운데서 분수는 퐁퐁 나오지, '큰 물건'은 금방 퍼져 아주…. 나머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그때 우리 아이 다섯 살. 일단 저질러놓고 보니 자기도 큰일이다 싶었는데 말도 못하고 잔뜩 주눅들어 있었던 거다. 애가 빨리만 얘기했어도 어찌 달랑 건져 일이 좀 쉬웠을 수도 있었을텐데. 온탕 물 다 빼고 다시 소독해 새 물 갈아넣었을 그 아주머니께는 지금도 너무 죄송하다.

김미숙(41.인천 검암동.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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