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고(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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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영삼씨는 요즘 「신사고」라는 말을 자주한다. 엊그제 민주당의 간판을 내리는 고별기자회견에서도 그런 말을 했다. 야당시절을 청산하고 「여대」로 변신하는 모티브를 「신사고」에서 찾았다.
『이제는 지역분열에 따른 갈등,민주대 반민주라는 도식에서 비롯되는 양분법적 정치갈등,민과 군 사이의 보이지 않는 갈등,그런 모든 발상과 타성을 과감히 바꾸어….』
이를테면 이것이 그의 신사고인 것 같다.
「신사고」는 원래 소련의 고르바초프가 만들어낸 말이다. 그는 소련의 경제,외교,인권정책에 대전환을 모색하며 「노보예 무이슬레니예」라는 말로 설명했다. 글라스노스트(개방)와 페레스트로이카(개혁)는 바로 그것을 상징하는 말이다. 그의 정치철학은 오늘 세계의 지평을 바꾸어놓았다.
정치평론가들은 고르바초프의 신사고를 놓고 우연의 소산이나 그의 개인적인 영감보다는 그 당위성에 더 주목한다. 고르바초프는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종래의 사고로는 소련이나 동유럽을 더 이상 앞으로 끌고갈 수 없다는 한계를 그는 스스로 절감하고 있었다.
지난해 김영삼씨는 소련을 방문하고 그것을 직접 보았다. 그의 신사고 발상도 여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은 아닐까. 그 자신도 그의 정계개편 구상은 소련을 방문한 직후의 일이라고 했다.
아직 그의 신사고는 윤곽이 분명치 않지만 우리는 거꾸로 그 의미를 이제부터 새겨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의 말마따나 『아직은 독재의 잔재가 남아 있는 상태에서』,『지난 30여년간 독재정권으로부터 이루 말할 수 없는 모진 박해와 탄압을 받아온 사람』이 하루아침에 여당으로 변신한 것은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는 『구국의 길』이었음을 「학실히」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그는 명분보다는 실리에 눈이 어두운 평범한 정치인 가운데 하나였다는 역사의 심판을 면치못할 것이다. 그때엔 그가 서있을 도덕적인 입지도 없다. 30일의 고별기자회견에서 김영삼씨가 한 말을 국민들은 두고두고 잊지 않을 것이다. 『나라를 구한 사람으로 역사에 기록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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