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조 지상 백일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장원>

<상여 가는 길>
길고 질긴 삶의 매듭
훌훌 털고 나선 자리
푸른 물살 넘나드는
섬 하나로 떠갑니다
저승길 난간 너머로
피어나는 겨울 설화.
선소리 먹인 상여
바람에 떠갑니다
『어허야 어허어허』
별 하나로 살아나서
멀고 먼 인연의 끝자락
업장같은 흙의 숨결.
김 삼 환 <서울시 노원구 상계동172 대림아파트103동803호>

<차상>

<종달새>
겨우내 입 다물고
신열 앓던 종달새 가
오선지 처럼 가지런한
보리밭 이랑에서
포로롱 음표도 없이
실로폰을 치고 있다.
박영석 <부산시 부산진구 전포2동146의21>

<차하>

<내림굿>
신맞이 너름새에
주문 따라 오른 넋
허공잡고 칼날 딛자
어질머리, 어질머리
눈 부벼
숨죽인 가슴
무아경속 강신좌
김 기 배 <서울시 도봉구 방학1동 698의 30>

<입선>

<봉평고을>
어물져 흐르는 물
마음 깊이 도사린 정
다소곳 머리 조아려
품안 가득 안기는 꽃
휘영청 달이 밝으면
밭이랑은 은모래.
이 병옥 <강원도 평창군 대화면 대화5리>

<추곡 수매장 에서>
앞집 과수댁은
가을 후 앓고 있다.
의료보험 들었어도
병원에 가질 않는다.
아마도 그 속사정이
따로 크는 모양이다.
아내는 그 집에
병문안 다녀오더니
달 덜 찬 사생아
쌍둥이를 낳았다 한다.
산모의
산욕열만큼
찝찔한 판국이다.
자생력이 도무지 없는 그 부인은
유니폼을 입혀
어디론가 떠나 보냈다.
우리는
막걸리 마시며
아기 장래를 걱정했다.
신 동익 <경남 울주군 삼남면 가천리 690의 3>

<무상함>
꿈에 무너지는 하늘이 무서워 햇살 푸석 거리는 길을 떠나렵니다
모두들 잃어버린
등 굽은 나와 바람의 길
햇살의 파편에 찔려 양심도 저버리고
낡은 역사 속으로 도망을 하렵니다
부서진 그림자 남기고
어깨 휘인 모습으로
이 영 순 <대구시 남구대 명9동930의1 대구 전신전화 건설국>

<동백꽃>
늘 창가를 못 떠나고 기웃거리는 저 눈빛 、바람에 더 고운 꽃은 선홍빛 미소를 띠고 발돋움 열렬한 기도에 겨울이 잠들었다.
우아지 <부산시 부산진구 양정2동 321의3>

<배면의 거울>
검은빛 뱃속으로도 탐식 못할 사각지대
남루한 언어들이
명멸하는 서슬에도
따로이
네 앞에 서면
부라리며 웃는 얼굴.
이인순 <대구시 동구 신기동 모란아파트1차 5동605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