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경험한 이웃국가들 우려|현재론 「국가연합」형태 바람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20년전 당시 서독대통령 하이네만은 독일을『난해한 조국』이라고 말했다.
하이네만의 그 같은 지칭은 오늘날의 독일에 대해서도 정당한 평가임이 증명되고 있다.
독일인들이 무분별한 통일논의를 개진할 때 우리의 이웃국가들은 불안감은 물론 심지어 경악의 눈으로 그 같은 논의를 지켜보고 있다.
많은 서독정치인들은 독일 통일문제에서 각광 받기 위해 갖은 미사여구를 펼치면서 동독의 혁명선구자들에게 더 많은 위험을 감수하도록 충동질하고 있다. 이에 대해 독일의 이웃국가들은 그들의 과거경험에 의거해 통독문제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왜냐하면 과거에 대한 기억이 올바른 나라라면 유럽의 심장부에 다시 거대한 힘을 가진 국가가 등장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독일도 또한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지난75년 간의 최근세 독일역사에서 고통과 패배, 수백만명의 난민, 수백만명의 희생,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범죄로 점철돼 있기 때문에 그 누구도 재통일에 대한 요구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독일이란 국가에서는 어떤 종류의 선의를 동원한다 해도 통일을 위한 정치적 해결을 거듭 모색할 수 없다.
전후 동독은 소련에 의해 경제적으로 착취당해왔다. 과거 소련은「대 독일」에 의해 전 국토가 유린당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니까 소련은 전후에 동독에 대해 과거의 원한을 앙갚음해온 셈이다.
이에 대해 동독인들이 반발하자 소련은 53년 탱크를 보냈으며 드디어는 장벽을 설치, 소련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소련에 의한 보복이 같은 독일인들 중에서도 유독 동독에 사는 독일인들에게만 가해졌다는 사실이다. 쉽게 말해서 동독인들은 「불공평하게도」 서독인들 몫까지 함께 소련으로부터 보복 당한 셈이다. 이런 이유에서 우리 서독인들은 그들 동독인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그들에게 해야할 일은「파산지경에 처한」동독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면서 거만을 떠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그들만 부당하게 져온 부담을 지금이라도 같이 나눠지면서 그「빚」을 청산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제조건의 충족 없이 입으로만 통일을 외치는 것은 공염불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모트로프 동독총리가 제안한「계약공동체」안은 현재상황에서 볼 때 매우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동서독이「한 나라」가 되는데 있어 서독이 동독을 병합하는 식의 통일국가가 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더 클 것이다. 이런식의 국가에선 독일인들은 그들이 그동안 그토록 열심히 노력해 이룩한 아이덴터티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으며, 독일이라는 「표준화」된 역사의 무게가 그들을 짓누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통일된 독일이라는 거대한 괴물은 유럽이 하나로 나아가는 길에 커다란 장애물이 될 것이 분명하다. 반면 두개의 독일이 각자의 존재를 인정하는 국가연합은 새로운 독일을 탄생시키는 복음이며, 유럽통합의 장래에도 서광을 비춰주는 기쁜 소식이 될 것이 틀림없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