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팔트위의 추모식(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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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종철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그놈 뜻대로 한몸 바쳐 이 나라 민주화의 터를 닦았기에 그것으로 위안을 삼았지요. 그런데….』
경찰의 원천봉쇄에도 불구하고 14일 오후2시 민주열사 박종철기념사업회가 주최한 「고 박종철군 3주기 추모식」이 강행되고 있는 명동 성당.
붉은 머리띠와 「양심수 석방」이라 쓴 녹색 어깨띠를 하고 양손으로 박종철군의 사진을 든 1백50여명의 시민ㆍ학생들이 박군을 위한 묵념을 올렸다.
그 맨앞줄에서 박군의 아버지 박정기씨(62)는 아스팔트 위에 앉아 성당 정문을 막고 있는 전경들에게 시선을 정지시켰다.
『종철이의 추모식을 경찰이 왜 막는 겁니까. 종철이가 목숨바쳐 이루려던 사회는 아직도 오지 않은 걸까요.』
박씨는 위로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부인 정차순씨(57)의 손을 꼭 잡고 이렇게 말했다.
사회자가 추도사를 할 사람을 찾자 박군과 같은해 최루탄에 맞아 숨진 고 이한열군의 어머니 배은심씨(52)가 자원해 나섰다.
『자식들은 어두운 땅속에 있고 부모들은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있는 현실이 사라지지 않는한 5공청산은 아직 멀었습니다.』
배씨는 간단한 추도사를 마친후 전경들을 향해 돌아서며 『어버이의 마음으로 부탁하니 집회를 막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이때 멀리서 추도식에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의 구호소리.
경찰들의 다급한 호루라기소리와 발소리.
『3년전 그때와 달라진게 없어요. 달력이 넘어간다고 지난 세월과 단절이 됩니까.』
휴일을 맞아 나들이 나온 한 시민의 놀란 표정과 독백(?) 속에는 지난 시절의 어두운 그림자가 아직도 남아있었다.<박수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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