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익 앞세운 국가 폭력고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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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콘돌』은 단순한 감각 반복식 스필버그류 할리우드영화와는 다르다.
오락성과 사회성이 적절히 배합된 여운이 긴 미스터리다.
미국 CIA의 스산한 인권유린을 축으로 한 주제는 꽤나 심각하다.
국익이라는 이름아래 국가기관에 의한 무자비한 인명살해, 국가기밀과 관련된 언론공작, 국익과 보도의 문제등.
시드니 폴락 감독은 정보사회의「국가폭력」을 정면으로 다루는 일방 매스 미디어의 정의를 조심스레 건드리고 있다.
CIA의 상부조직이 국가기밀인 석유전략문제를 우연히 알게 된 하부 부서를 무참히 파괴·살해하는 음모에 맞서는 한 조직원의 저항을 그린 이 영화는 도피중 한 여인의 적극적 도움이 음모를 파헤치는데 큰 기여를 한다는 점에서 시민정신의 양심까지도 함께 보여주고 있다. CIA라는「폭력기관」과 쫓기는「시민정신」이 맞선 셈이다.
거대한 조직을 상대로 외로운 투쟁을 벌이는 모습은 이 영화에서는 CIA로 설정됐지만 현대사회의 각종 조직에 얽매여 알게 모르게 희생돼 가는 산업사회 개인들의 비애까지 맛보게 한다.
라스트 신의 여운은 이점을 오래도록 남게 해준다.
민주사회의 마지막 보루라고 일컬어지는 언론기관(영화속은 뉴욕타임스)에 모든 사실을 미리 폭로, 배수진을 치고 CIA의 상급자와 맞선 주인공. 그러나 상급자는 차갑게 내뱉는다. 『뉴욕타임스는 보도를 못 할 것이고 너는 개처럼 길바닥에서 죽어갈 것』이라고.
「현존하고도 명백히 국가이익에 배치될 때 보도하지 않는다」는 뉴욕타임스가 이 사실을 보도했는지의 여부를 안 밝힌 것은 「미국양심의 한계」처럼 비쳐진다. 관객은 NYT의 보도를 보고 싶겠지만 현실의 미국언론이 반드시 그러리라고는 폴락 감독 스스로도 자신할 수 없기 때문이리라.
로버트 레드퍼드, 페이 더너웨이, 막스 폰 시도, 존 하우스먼, 클리프 로버트슨등 내노라 하는 1급 배역진과 그들을 요리하는 시드니 폴락의 연출 솜씨를 보는 것은 이 영화의 내용과 상관없이 영화팬이라면 즐겁고도 신나는 일이다. <이헌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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