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에 매인 인간형묘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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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패밀리 비지니스』는 생의 페이소스를 저릿하게 느끼게 하는 인간극이다.
시드니 루멧감독은 제도에 얽매인 인간의 유형을 매우 유머러스하게 그려냈다.
그가 겨냥한 것은 이 건조하고 각박한 세상에 인간의 원형을 복원하고픈데 있지 않나 싶다.
영화의 서술방식은 도식적일 만큼 인물의 유형화에 충실하다.
가족은 1차집단이며 이를 지탱하는 힘은 애정이다.
도둑질은 반사회적 행위고 이를 막아내는 것은 한 사회의 질서다.
3대 부자가 꾸민 도둑질이 성공했다면 이 영화는 단순한 코미디에 머물렀을 것이다.
실패는 예정된 코스였고 『패밀리…』는 그 극단의 행위를 통해 역설적으로 도시살이가 잃게한 사람의 정을 되찾고자 한 작품이다.
평생을 도둑질로, 일탈된 윤리관으로 일관한 1대(숀 코너리)는 아들(더스틴 호프먼)을 도둑으로 키웠다.
자유분방한 1대의 삶의 방식은 경쟁사회에서 찌든 사람들에겐 매우 로맨틱하게 비친다. 2대는 아들 (매튜 브로데릭)을 MIT 장학생으로 키워냈다. 2대는 과거 아버지와 함께 도둑질을 「즐겼지만」이제는 잘자란 아들에게 희망을 건다.
자수성가형인 그는 자본주의사회의 전형적 인물-자신과 가족에 충실한 바로 그점 때문에 철저한 이기주의자로 찍혀야 하는 현대인의 어두운 면을 대변하고 있다.
도둑질이 3대의 제안으로 꾸며졌고 도둑질의 대상이 유전물질이란 것은 대단히 역설적이고 상징적이다.
절도 유전인자가 한 가계에 흐르느냐, 아니냐는 설정자체에 무리가 있지만 아버지에 의해「재배되고」 따라서 자신의 자유가 희생됐다고 생각하는 3대는 유전물질의 절도를 통해 가족간의 내밀한 정적공간을 확인하고자 했던 것 같다.
아들의 도둑제안을 극구 말리는 2대의 모습은 요즘 아버지의 전형을 보는 듯하다. 아무렴 도둑보다야 과학자가 낫겠지 싶은데 3대의 하는 짓이 조금 답답하다.
록펠러까지 도둑으로 몰아 붙이며 『세상은 넓고 훔칠 것은 많다』는 1대의 독백은 멋진 풍자다. <이헌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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