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인blog] 가난한 조국 콩고에 '사랑 센터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지난 1월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의 정상급 스트라이커가 조국을 위해 뛴다며 아프리카로 날아갔습니다.

그의 조국은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독일 월드컵 본선 진출국 토고를 2-0으로 꺾고 8강에 진출하는 이변을 낳았죠. 그는 콩고민주공화국의 '아이콘'이자 자랑스러운 프리미어리그 선수 로마나 루아루아(26.포츠머스)입니다. 루아루아는 지난해 9월 친선경기를 위해 아프리카를 방문했다가 말라리아에 감염돼 크게 고생한 적이 있습니다. 더구나 네이션스 컵을 치르던 1월 중순에는 18개월 된 아들이 영국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조국을 원망하거나 아프리카를 싫어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15일 조국의 어린이들을 위해 축구 재단을 설립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올해 안에 숙소와 스포츠 센터를 완성하고 9명의 상근자도 뽑는다고 하는군요. 이 정도면 변함없는 조국 사랑입니다.

콩고민주공화국은 1990년대 말 내전으로 400만 명이 죽었습니다. 한반도의 11배 정도 되는 광활한 국토(234만㎢)에는 남은 것이 없습니다. 최근에 영국 레스터대 애드리언 화이트 교수가 발표한 국가별 행복 순위에서 콩고민주공화국은 조사국 '178개국 중 178위'였습니다. 건강.부.교육 모두 최악이었죠.

루아루아는 89년 9살 때 난민 신분으로 영국으로 건너갔습니다. 당시 콩고민주공화국은 군사독재였으므로 아마 정치적 난민으로 인정받은 것 같습니다. 런던에서 자란 루아루아는 맥도널드에서 청소를 하며 살았습니다. 그가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게 된 데는 지역 청소년 센터의 도움이 컸습니다. 아프리카인 특유의 유연성과 예측 불가능한 개인기를 겸비한 스트라이커 루아루아의 탄생은 이렇게 이뤄졌습니다. 2000년 프리미어리그 팀인 뉴캐슬은 3부리그 팀인 콜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고 있던 루아루아를 데려오는 데 225만 파운드(약 41억원)의 이적료를 썼습니다. 루아루아는 이때부터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됐습니다. 콩고민주공화국 출신 중 그만큼 유명한 선수는 없습니다. 루아루아는 월드컵 직전에 벌어진 프리미어리그에서 이영표 선수를 속이고 중거리슛을 넣어 한국 언론에도 알려진 적이 있습니다. 그때 언론들은 '아프리카 선수를 통해 토고전 교훈을 미리 얻었다'는 보도를 했었습니다.

그는 경기장에서 매우 '탐욕적(greed)'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골 욕심이 많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의 삶은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그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전쟁으로 얼룩진 조국에서 자라난 어린이들에게 새로운 삶을 열어주고 싶다. 내가 어린 시절 그랬던 것처럼 어린이에게는 바른 길로 인도해줄 조언자가 필요하다. 내가 작은 보탬이 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강인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