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노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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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나이가 들면 얼굴보다 마음속에 더 많은 주름살이 생긴다.』
몽테뉴가 그의 수상록에 남긴 말이다. 도연명은 나이 드는 것을 세한에 비유했다. 추운 겨울이라는 뜻인데 노년을 그렇게 묘사한 것이다. 아무리 상상력이 풍부한 시인이라도 노년을 달리 아름답게 표현할 말은 없었나보다.
독일작가 장 파울리히터는 좀 더 실감나는 말을 했다. 『노년을 그토록 서글프게 만드는 것은 즐거움이 없어지기 때문이 아니라 희망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 주변에는 희망도 없어 보이고, 마음에 주름살은 가득하고, 세상의 훈기마저 느끼지 못하는 노인들이 스스로목숨을 끊는 경우를 자주 본다. 이들의 나이를 보면 하나같이 노인 아닌 노인들이다. 이제 갓 60을 넘은 정도다.
이들은 노년이 되어 노인이 된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노인일 뿐이다. 벌써 기업체에선 55세만 되면 정년을 따진다. 말이 정년이지 이런 사람들의 정신연령은 여전히 젊다.
요즘은 60대인 사람도 겉보기엔 40대와 별 차이가 없다. 건강한 모습이 그렇고, 옷매무새가 그렇고, 생각도 그렇다. 오늘의 문명은 그처럼, 사람들로 하여금 세월을 거슬러 살게 만든다. 그야말로 만년청년을 구가하고 있다.
정년55세는 평균수명 60세 시절의 감각이다. 노년인구 증가와 함께 만년청년들의 실업율 역시 해마다 늘어만 가는 것은 인간자원의 면에선 이만저만한 소모가 아니다.
하루아침에 소모품의 신세가 된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좌절감을 극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가정에서조차도 이들은 어디에 마음 붙일 곳이 없다. 요즘은 자녀들이 가정을 갖게 되면 우선 딴집 살림 차릴 생각부터 한다. 그것을 당연한 일로 아는 것이 시속이다. 자살은 끔찍한 일임엔 틀림없지만 오죽하면 그런 궁리를 할까하는 생각도 든다.
젊은 노인들의 문제는 우리사회의 중요한 과제가 되고있다. 해가 갈수록 그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노인들에게 공짜 버스표나 나누어주는 소극적인 대책으로는 그 문제의 해답을 찾을 수 없다.
생산성은 공장에서만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노년인구의 생산성을 높이는 문제도 우리사회는 생각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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