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사가 박봉 쪼개 소대원 체육복 마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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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복을 입혀 보이고 있는 이민종(右)하사.


지난 5월 제대한 김승훈(23.예비역 병장)씨는 최근 뜻밖의 선물을 택배로 받았다. 편지와 함께 도착한 것은 체육복. 김씨는 "7개월 전 소대원 앞에서 체육복을 사주겠다고 약속한 부소대장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육군 50사단 영천연대 기동중대 1소대. 평소 축구를 좋아하던 소대원들이 부소대장에게 '돈을 모아 소대 체육복을 맞추자'고 제안하자 부소대장 이민종(26) 하사는 "생 돈을 거둘 수는 없다"며 '내가 체육복을 사 주마'고 약속했다.

소대원 26명의 옷 구입비는 최소 45만원. 하지만 이 하사에게 이 금액은 결코 작은 돈이 아니었다.

그는 100만원쯤 하는 초급 하사 박봉에 병석의 홀어머니를 뒷바라지하며 연세대 의예과에 다니는 여동생 학비를 떠맡고 있었다. 지난달도 병원비 200만원이 나갔고 각종 적금은 아예 동생 앞으로 해 놓았다. 그래서 그가 한달에 쓸 수 있는 돈은 5만원이 고작. 체육복 구입비 45만원은 그에겐 1년치 용돈과 맞먹는 금액이었다.

이 하사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지난 7개월간 휴가를 반납했다. 쓸데없는 지출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소대원들은 그 사이 약속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200여일동안 아껴 모은 돈으로 이 하사가 구입한 체육복은 모두 32벌. 이 하사는 소대원 전원은 물론 그동안 전역한 병사 3명의 집으로도 체육복을 보냈다.

그는 또 소대원 전원의 통장을 맡아 '한달에 1만원만 쓰기 운동'을 벌이는 중이다. 병사들의 월급 중 1만원 이내만 지출을 허용하는 것. 그래서 최근 전역한 주동옥(22) 병장은 80만원을 저축했고, 얼마 전 휴가를 다녀온 김형석(22) 병장은 어머니께 용돈 20만원을 드릴 수 있었다.

대구=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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